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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3⋅1 운동

[3] 3⋅1 운동

일본의 무자비한 탄압이 계속되는 동안, 우리 민족의 독립 정신은 더욱 강하게 불타오르고 있었다.

드디어 1919년 3월 1일, 온 겨레의 울분이 폭발하여 일제히 독립 운동의 깃발을 올렸다.

33인의 민족 대표들은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여 우리 나라가 독립 국가임을 세계 만방에 선언하고, 많은 국민과 학생들은 거리에 나와 독립 만세를 외치며 시위하였다. 물론, 나이 많은 노인들과 여자들도 한 마음이 되어 이에 가담하였으며, 해외의 동포들도 적극적으로 협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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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 대표들의 독립 선언식
민족 대표들의 독립 선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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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우리의 평화적인 시위와 독립의 외침에 대하여 일본 군대와 경찰은 야만적인 방법으로 탄압하였다. 수원에서의 무차별 대량 학살 사건, 어린 소녀 유관순의 죽음 등 일본에 의한 탄압으로 2만여 명이나 죽고 다치는 일이 생겼으며, 약 5만 명이나 붙잡혀 감옥에 갇혔다.

3⋅1 운동은 꺾일 줄 모르는 우리 민족의 자주성을 나라 안팎에 증명한 행동이었다. 이에 일본도, 3⋅1 운동을 통하여 한민족을 무력으로만 다스릴 수 없음을 알게 되었다.

3⋅1 운동은 독립을 되찾는 데 성공하지는 못했으나, 매우 중요한 민족 운동이었다.

3⋅1 운동 후, 독립 운동을 보다 조직적으로 펴기 위하여 중국의 상하이에 대한 민국 임시 정부가 세워졌다.

임시 정부는 민주주의 원칙에 따라 대통령제를 택하고, 나라 안팎의 동포에게 희망과 용기를 북돋워 주었다. 대한 민국 임시 정부는 독립 운동의 총본부로서, 조국의 광복이 이루어지는 날까지 활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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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 정부에서 활동한 사람들
임시 정부에서 활동한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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