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5차 교육과정
  • 초등학교 사회 4-2(5차)
  • 1. 오랜 역사를 지닌 우리 민족
  • (1) 역사의 고장 강화도
  • [2] 초지진과 고려 궁터

[2] 초지진과 고려 궁터

강화도에 있는 유적을 통해서 조상들이 나라를 지켜 온 모습을 알아보자.

강화도에는 ‘진’이나 ‘보’가 붙은 지명이 흔한데, 진은 군인이 주둔했던 곳이고, 보는 성곽의 일종이다. 우리는 이 진이나 보를 통하여 조상들이 나라를 지켰던 모습을 살펴볼 수 있다.

초지진은 강화도의 남동쪽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옛날에 강화도 남쪽에서 한강 쪽으로 올라 가려는 배들은 이 초지진을 지나야만 했다. 그래서 당시의 우리 군사들은 서울의 안전을 위하여 이 곳을 지켰으며, 만약 다른 나라의 배가 허락 없이 지나가려고 하면 이를 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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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
초지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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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20여 년 전 프랑스와 미국 군함이 쳐들어왔을 때에 우리 군사들은 바로 여기서 용감하게 싸웠다.

강화 대교를 건너 강화도로 들어가는 길목에 갑곶진이 있다. 갑곶진은 강화도와 육지를 오고 갈 때에, 배를 타던 나루터가 있던 곳이다. 갑곶진은 교통상 중요한 구실을 하였을 뿐 아니라, 외적의 침입을 막는 데도 중요한 구실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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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곶진
갑곶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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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광성보, 덕진진 등도 옛날에는 군사들을 두어 지켰던 곳으로, 옛날의 포대를 다시 손질해 놓은 모습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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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진진 포대
덕진진 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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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읍 중심부에는 ‘고려 궁터’라는 옛 궁궐터가 남아 있다. 이 곳은 중국의 북쪽에서 나라를 세운 몽고족이 침략하였을 때에, 이에 맞서 싸우던 고려가 수도를 강화도로 잠시 옮기고 궁궐을 지었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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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궁터
고려 궁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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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도와 육지 사이의 바다는 비록 폭은 좁지만, 물살아 세어 배로 건너기가 매우 어려웠다. 그래서 바다에 익숙하지 못한 몽고군은 강화도까지 쳐들어오지 못했고, 고려는 꿋꿋하게 싸워 나라를 지킬 수 있었다.

우리 조상들은 외적과 맞서 싸우는 어려움 속에서도 훌륭한 문화를 꽃피웠다. 우리 민족이 자랑거리로 내세우는 금속 활자와 팔만 대장경판도 몽고군의 침략을 물리치는 어려움 속에서 이루어 진 것이다.

연구

사회과 부도 4, 8쪽을 보고 강화도가 서울을 지키는 곳으로서 중요했던 까닭을 살펴보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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