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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 척화비

[4] 척화비

조선 후기에 서양 세력이 밀려오자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대처하였는지 알아보자.

1863년 임금의 자리에 오른 고종은 열두 살밖에 안 된 어린 소년이었다. 그래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 대원군이 대신 나라일을 맡아 다스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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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과 흥선 대원군
고종과 흥선 대원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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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에는 왕실의 외척들이 정치를 마음대로 하여 이미 나라가 어지러워져 있었고, 왕의 힘은 매우 약해져 있었다.

흥선 대원군은 잘못된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여러 가지 제도를 마련하였다. 훌륭한 인재를 뽑아 나라일을 맡겼으며, 백성을 괴롭히는 관리를 엄히 처벌하고, 나라 살림을 튼튼히 하기 위하여 양반에게도 세금을 내게 하였다. 그리고 임진왜란 때 불타 버린 궁궐을 다시 지어, 왕실의 위엄을 세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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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안에 있는 근정전
경복궁 안에 있는 근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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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때, 나라 밖에서는 서양의 여러 나라가 아시아의 여러 나라에 그 세력을 뻗치고 있었다. 마침내 서양 여러 나라의 배들은 우리 나라 바닷가에도 자주 나타나 무역을 하자고 요구하였다.

그러나 흥선 대원군은 그들의 요구를 단호히 거절하였다. 이에 프랑스와 미국은 각각 군함을 보내어 강화도를 공격해 왔다. 이 때, 강화도를 지키고 있던 우리 군대는 용감히 싸워 이들을 물리쳤다. 이를 양요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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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로라도호
콜로라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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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차례의 양요를 치른 흥선 대원군은 나라의 방비를 강화하고, 전국 곳곳에 척화비를 세웠다. 척화비에는 서양의 오랑캐가 쳐들어오면 화친하지 말고 싸워서 물리치자는 내용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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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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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흥선 대원군이 서양 세력을 받아들이지 않으려고 한 것의 옳은 점과 옳지 않은 점을 말해 보자.

힘으로 서양의 세력을 막고 있던 흥선 대원군이 정치에서 물러나자, 우리 나라는 세계에 문호를 개방하고 외국의 세력을 받아들였다.

제일 먼저 우리 나라에 들어온 외국의 세력은 일본이었다. 이어서 미국, 영국 등 서양 여러 나라의 세력이 들어왔다.

우리 나라는 이들 여러 나라와 외교를 맺고 이들의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연구

흥선 대원군이 물러난 후, 우리 나라가 세계 여러 나라에 문호를 개방한 까닭을 알아보자.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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