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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의병 전쟁

[1] 의병 전쟁

일본이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했을 때의 의병 활동에 대하여 알아보고, 이러한 활동을 통해 배울 점을 찾아보자.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 나라에 대한 침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하였다.

성준이는 이 때 우리 조상들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였다.

“선생님, 우리 조상들은 가만히 있었나요?”

“아니에요. 우리 민족은 일본의 침략을 막으려고 온갖 노력을 다 했지요. 우선 나라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애쓴 조상들의 활동에 대해 이야기해 주겠어요.”

선생님께서는 몇 가지 자료를 칠판에 붙이셨다.

일본의 침략에 대항한 우리 조상들

☆ 순국

나라를 위해 일하던 대신들이 일본의 침략으로 나라가 망해 가는 것을 차마 볼 수가 없어 일본의 잘못을 세계에 알리고, 우리 민족에게 일본에 대항하여 싸울 것을 당부하는 유서를 남긴 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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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영환
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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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병

정식 군인이 아닌 일반 백성들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를 들고 일본과 맞서 싸웠다 그들은 덕망이 높은 양반 중에서 용감한 사람을 지도자로 삼아 군대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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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익현
최익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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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문

신학문을 익힌 사람들은 신문을 만들어 세계 여러 나라에 일본의 잘못을 알리고 우리 민족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우리 민족은 이러한 신문을 통해 나라가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 수 있었고 새로운 지식과 정보를 얻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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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의 사정을 알린 신문
조국의 사정을 알린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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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특사 파견

고종 황제는 일본의 침략을 널리 알리기 위해 국제 회의에 우리 측 대표를 보냈다. 그 대표의 한 사람인 이준 열사는 일본의 방해로 일이 제대로 되지 않자, 분함을 이기지 못한 채 그 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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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의 명령을 받은 특사들
고종 황제의 명령을 받은 특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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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육

신교육을 받은 개화된 사람들은 ‘아는 것이 힘’이라 생각하고, 곳곳에 학교를 세워 글을 가르치고 우리 민족의 자부심을 일깨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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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맹 퇴치 운동 기사(조선 일보)
문맹 퇴치 운동 기사(조선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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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준이는 우리 조상들이 일제 침략에 대항한 방법 중에서 의병 활동에 대하여 좀더 알고 싶었다.

임진왜란 때에도 의병들이 큰 공을 세웠다고 배웠는데, 이 때에 또 의병들이 일어섰다는 것은 우리 조상들의 나라와 민족을 깊이 사랑하는 정신을 나타내는 것 같았다.

성준이는 도서관과 서점을 찾아다니며, 그 시기의 의병 활동에 대한 자료들을 모아 보았다.

의병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침략하려 하자, 이를 막기 위해 용감히 일어섰다. 그들은 총이나 신식 무기가 아닌 대나무로 만든 창이나 곡괭이, 삽 등 농기구까지 들고 일본의 신식 군대와 맞섰다.

의병 활동은 을사조약을 맺자 더욱 강해졌다. 을사조약은, 조선은 일본의 보호를 받아야 하며 자신들의 허락이 없으면 다른 나라와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다는 조약이었다. 이 조약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지배하려는 속셈을 보여 주는 것이었기 때문에, 우리 조상들은 이를 반대하여 곳곳에서 의병을 일으켰다.

처음에는 나라를 걱정하는 선비들이 의병들을 지도하였으나, 점차 평민들 중의 용감하고 전술에 뛰어난 사람들이 의병장이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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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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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 제국 시대의 구국 운동에 대한 사례들을 조사해 보자.

이러한 우리 민족의 저항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점차 우리 나라를 그들의 것으로 만들기 위해 우리 군대를 해산시켰다.

그러자 우리 나라 군대의 대대장 박승환은 군인으로서 나라를 지키지 못한 것을 부끄럽게 여겨 스스로 목숨을 끊고 말았다. 대장이 자결하자, 병사들은 더욱 비장한 마음으로 일본군과 맞서 치열한 싸움을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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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환
박승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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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승환의 유서

군인으로

능히 나라를 지키지 못하고,

신하로서

능히 충성을 다하지 못하면,

만 번 죽어도 애석하지 않다.

이후로 의병은 해산된 군인과 합세하여 더욱 조직적으로 일본과 맞서 싸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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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이 일어난 지역
의병이 일어난 지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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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은 평민으로 의병을 이끈 사람이다. 그는 태백산 호랑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면서 일본인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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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돌석의 태백산 전투(민족 기록화)
신돌석의 태백산 전투(민족 기록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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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는 의병을 일으켜 싸우다가 만주로 건너가 독립 운동을 계속하였다. 안중근 의사는 일본의 침략을 막기 위해서는 침략의 우두머리를 없애야 한다고 생각하고, 중국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하였다.

이러한 우리 민족의 필사적인 저항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1910년에 우리 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말았다.

우리 나라에서의 활동이 어려워진 의병들은 간도나 연해주, 중국 동북부 같은 곳으로 이동하여 독립군을 조직하였다. 독립군들은 군사 훈련을 하고 무기도 새롭게 갖추어서 곳곳에서 일본군을 무찌르고 괴롭히면서 우리 나라의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웠다.

중국의 봉오동과 청산리 등에서 일본군을 크게 무찌른 전쟁도 의병들이 모여 만든 독립군의 활약이었다.

♣우리 조상들 일제에 항거한 여러 방법 중에서 자신은 어떤 것을 택하였겠는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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