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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학교의 민족 운동

[1] 학교의 민족 운동

나라의 힘을 기르고 독립을 되찾기 위하여 우리 겨레는 어떤 노력을 하였는지 알아보자.

선생님께서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전기문을 읽어 보자고 하셨다.

서점에는 안창호 선생에 대한 여러 종류의 책이 있었다. 영수는 그 중에서 초등 학교 학생들을 위한 책을 골라 읽고, 다음과 같은 독후감을 썼다.

안창호

6학년 ○반 박영수

안창호 선생은 조선 시대 말의 애국자였다. 선생은 당시의 세계 사정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라 걱정을 많이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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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안창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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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 지금 우리 나라는 바람 앞의 등불처럼 위태롭기 짝이 없습니다. 지금까지는 청나라가 대국 행세를 해 왔지만, 앞으로는 일본, 러시아, 그 밖의 서양 여러 나라들이 언제 또 대국 행세를 하려고 할지 모릅니다. 이 때야말로 온 국민이 똘똘 뭉쳐 힘을 길러야 할 때입니다. 우리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 나라를 탐내는 나라가 많습니다. 첫째도 힘이고, 둘째도 힘입니다.”

이것은 안창호 선생이 21세 때 청중들 앞에서 한 연설의 내용이다.

안창호 선생은, 나라의 힘을 기르는 방법은 교육을 통해서 백성들을 깨우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평양에 대성 학교를 세우고 젊은이들을 교육하였다. 안창호 선생이 세운 학교에서는 정해진 과목 이외에 민족 정신을 일깨우는 일과 민족성을 바로잡는 일을 교육 방침으로 삼아 민족을 위해 헌신할 인재를 기르는 데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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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선생이 세운 대성 학교(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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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안창호 선생은 우리 민족이 단결하고 독립 정신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흥사단을 조직하였으며, 중국 상하이로 건너가 대한 민국 임시 정부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일본 경찰에 잡혀 재판을 받을 때의 일이었다.

“독립 운동을 계속할 생각인가?”

일본 판사의 물음에 안창호 선생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였다.

“그렇다. 내가 밥을 먹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이고, 잠을 자는 것도 대한의 독립을 위해서이다. 이것은 내 몸이 없어질 때까지 변함이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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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선생이 교육 문화 활동을 위해 세운 흥사단 건물(미국)
안창호 선생이 교육 문화 활동을 위해 세운 흥사단 건물(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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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창호 선생의 전기문을 읽고 나는 큰 감동을 받았다. 나라와 민족의 힘을 기르기 위해서는 교육의 힘이 중요하다고 생각한 점과 국가와 민족을 한없이 사랑한 그분의 정신은, 학생인 내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였다.

이처럼 뜻있는 분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우리 나라의 주권을 빼앗고 우리 나라를 식민지로 만들려는 교육을 철저히 하였다.

그러자 우리 나라의 민족 지도자들은 국민들을 빨리 깨우치게 하기 위해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라도 공부할 수 있는 야학을 많이 운영하였다. 야학에서 울려 나오는 “가갸 거겨!” 소리는 우리 민족이 독립의 힘을 기르는 희망의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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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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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은 갖은 핑계를 대고 야학 활동까지 탄압하였다.

그러던 중 한국인도 대학 교육을 받아야 한다는 주장이 일어났다. 이리하여 뜻있는 민족 지도자들이 중심이 되어 조선인만을 위한 대학을 세우기 위해 노력하였다.

이 일은 일본의 끈질긴 방해와 대학을 세우는 데 쓸 자금 부족으로 그 뜻을 이루지 못하였지만, 그 정신은 보성 전문 학교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학교 교육을 통해 민족 운동에 힘쓰신 분들의 활동을 조사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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