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침략 속에서 우리 겨레는 한글 보급을 위하여 어떤 활동을 벌였는지 알아보자.
조선 말기에 우리 한글을 보급하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가장 많은 공을 세운 분이 주시경 선생이다.
주시경 선생은 독립 신문 발간 일을 하면서 한글 문법과 맞춤법 연구에 큰 업적을 남겼다. 그가 가르친 많은 제자들은 후에 한글 연구의 발전에 중심적 구실을 하였다.
우리 나라의 주권을 빼앗은 일본은 우리 민족의 각종 활동을 억압하였다. 즉, 우리 나라 사람이 마음대로 모일 수 없게 하였고, 책이나 신문 발간도 그들의 허락을 받아야 했으며, 심지어 여러 사람에게 마음대로 말을 할 수도 없게 하였다.
이러한 가운데에서도 한글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우리글을 지키기 위한 방법을 찾고 있었다.
그리하여 3⋅1 운동 이후에는 국어 연구에 뜻을 둔 사람들이 우리 민족의 문화를 지키기 위하여 우리 한글을 연구하는 단체인 조선어 학회를 만들었다.
이들은 세종 대왕이 훈민정음을 반포한 날을 ‘가갸날’이라고 정하고, 해마다 기념식을 올렸다. 그러자 우리 나라의 각 신문사와 출판사들도 한글 보급 운동을 적극 지원하였다. 또, 우리 나라 사람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연 야학에서도 한글을 열심히 가르쳤다.
조선어 학회에서 무엇보다도 큰 힘을 기울여 추진한 일은 우리말 사전을 펴냄으로써 민적의 얼이 담긴 국어를 보호하려 한 것이었다. 조선어 학회 회원들은 조선어 사전을 펴내기 위한 기초 작업으로 우리 나라 최초로 ‘한글 맞춤법 통일안’을 정하였다.
이것은 우리 나라 사람 모두가 한글을 바르게 사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조선어 학회에서는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모으기 위해서 국내의 각 기관은 물론, 해외에까지 사람을 보내어 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오도록 하였다.
일본은 침략 전쟁을 아시아 각지로 점점 넓혀 가면서, 우리 나라를 전쟁을 위한 기지로 이용하였다. 따라서, 우리 나라에서 더욱 많은 사람과 물자를 전쟁터로 끌어가게 되었다.
이러한 때에 민족 정신을 일깨우고 조선 말과 글을 지키려는 운동을 벌이는 조선어 학회의 활동이 일본으로서는 못마땅하였다.
일본은 마침내 조선어 학회가 독립 운동을 한다는 트집을 잡고, 회원들은 물론 이들과 관계 있는 사람들까지 닥치는 대로 붙잡아 갔다. 그리고는 모진 고문을 하여 거짓으로 자백을 하도록 만들었다. 고문으로 인해 죽는 사람이 생기고 많은 사람들이 감옥에 갇혔다.
조선어 학회는 광복 후까지 우리말 사전을 만드는 일을 꾸준히 이어와서 마침내 우리말 사전의 완성을 보게 되었다.
♣일본이 조선어 학회를 해산시키기 위해서 갖은 수단을 다한 까닭은 무엇이었는지 발표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