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초등학교 사회 6-1(7차)
  • 1. 우리 민족과 국가의 성립
  • (3) 유교를 정치의 근본으로 삼은 조선
  • [1] 정치 개혁으로 새로운 나라를
  • ● 조선이 건국된 후에 실시한 여러 정책에 대하여 알아보자.

● 조선이 건국된 후에 실시한 여러 정책에 대하여 알아보자.

조선을 세운 사람은 태조 이성계이다. 이성계는 고려 말에 우리 나라를 침범해 온 홍건적과 왜구를 무찔러 백성들로부터 큰 지지를 얻었다. 이성계를 따르는 사람들은 큰 정치 세력을 형성하였고, 기울어 가는 고려를 버리고 새 나라를 세우고자 하였다.

요동 땅을 정벌하기 위해 파견한 군대를 위화도에서 되돌려 정권을 잡은 이성계는 반대파를 물리치고 새 나라를 일으켰다. 그리고 고조선을 계승한다는 뜻에서 나라 이름을 조선이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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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
태조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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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는 나라의 모습과 분위기를 새롭게 하기 위해 도읍을 한양으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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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묘
종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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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은 한강 유역에 자리잡고 있어서 육로 교통과 수로 교통이 모두 편리하고, 한반도의 중앙에 있어서 새로운 중심지가 되기에 적합한 곳이었다.

새 왕조는 한양 둘레에 성곽을 쌓고, 그 안에 경복궁, 종묘, 관청, 시장, 학교 등을 세웠다. 한양을 동서로 흐르는 청계천에 여러 개의 다리를 놓고 사방으로 길을 내었으며, 많은 민가가 들어서도록 하였다. 이후 500여 년 동안 한양은 조선 왕조의 정치⋅문화⋅경제의 중심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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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서울 특별시 중구)
숭례문(서울 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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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성도
도성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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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양을 둘러싼 성곽의 4대문과 궁궐의 위치를 찾아보자.

4대문의 이름

⋅ 동 : 흥인지문

⋅ 서 : 돈의문

⋅ 남 : 숭례문

⋅ 북 : 숙정문

조선 왕조는 유교의 정신에 따라 나라를 다스리고 백성을 가르치고자 하였다.

유교에서는, 왕은 정치를 잘 하기 위해 충직하고 현명한 신하의 바른말에 귀 기울이고, 나랏일을 맡은 관리들은 오직 의로움을 따져 행하며 사리사욕을 멀리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양반과 선비들은 바른 행실로 백성들의 모범이 되고, 농민과 상인, 수공업자는 정직하고 부지런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러한 유교 정치의 가르침을 실제로 이루기 위해 조선 왕조는 정치⋅경제⋅사회 제도를 정비하였다.

▶ 그림을 보고, 유교 정신이 추구하는 정치와 백성들의 생활 모습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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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새 왕조는 영토 확장과 국방 강화에 힘썼다. 태종은 압록강 이남 지역에까지 백성을 이주시켜 이 지역을 개발하였다.

백성을 압록강 이남 지역에 이주시키는 일은 이후 세종, 세조, 성종 때까지 계속 이어졌는데, 특히 세종 때에는 두만강과 압록강 유역에 들어와 살고 있던 여진족을 몰아 내고, 이 지역에 4군과 6진을 설치하여 영토를 넓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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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영토 확장
조선 초기의 영토 확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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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은 고려 말 이후로 우리 나라 해안 지역을 계속 침입하는 왜구(일본 해적)에 대해서도 강력하게 대처하였다. 세종은 왜구를 소탕하기 위해 이종무를 대장으로 하는 원정군을 보내어, 왜구의 근거지인 쓰시마 섬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그 후 평화적인 교역을 원하는 일본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 위하여 해안의 세 항구를 열어 무역을 할 수 있게 하였다. 일본인들은 이 곳으로 구리, 황 등을 가져와 곡물, 옷감, 서적 등과 바꾸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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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인에게 무역을 허용한 부산포의 왜관
일본인에게 무역을 허용한 부산포의 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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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에는 일본 사신들이 머무르는 곳이 있었구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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