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초등학교 사회 6-1(7차)
  • 2. 근대 사회로 가는 길
  • (2) 외세의 침략과 우리 민족의 대응
  • [1] 척화비를 세운 까닭
  • ● 흥선 대원군은 외세의 침략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였는지 알아보자.

● 흥선 대원군은 외세의 침략을 어떻게 극복하려고 하였는지 알아보자.

이양선의 출현과 함께 서양인들이 조선에 찾아와 장사를 하자고 요구하는 일이 더욱 잦아졌다. 그들은 처음에는 식량이나 물을 요구하였으나 점차 무역할 것을 요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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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양선
이양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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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가 서양인들은 군함을 앞세우고 침략해 왔다. 당시 흥선 대원군을 중심으로 한 조선의 조정은 서양인들의 침략에 강력하게 대응하여 이들을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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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인양요와 신미양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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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 것은 나라의 힘이 강해진 다음에 해도 늦진 않을 것이오.

▶ 이양선이 해안에 나타나 나라가 어수선하였던 때, 대외 정책을 결정하는 조정 회의를 역할극으로 꾸며 보자.

• 등장 인물 : 고종, 흥선 대원군, 신하 1, 신하 2

병인양요

병인년(1866)에 강화도에서 프랑스 함대와 우리 군대가 출동한 사건을 병인양요라 합니다.

나라에서 천주교를 금하면서 프랑스 신부들을 포함하여 수천 명의 천주교도들을 처형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프랑스는 이 사건을 빌미로 조선에 쳐들어와 한 달 동안 강화도를 점령하고 우리의 귀중한 문화재를 빼앗아 갔다. 그러나 양헌수를 중심으로 한 우리 군대는 삼랑성(정족산성)에서 용감히 싸워 프랑스 군대를 물리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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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랑성 전투(상상도)
삼랑성 전투(상상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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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무찌른 삼랑성의 동문(인천 광역시 강화군)
양헌수 장군이 프랑스군을 무찌른 삼랑성의 동문(인천 광역시 강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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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신미년(1871)에 강화도에서 미국 군함과 우리 군대가 충돌한 사건을 신미양요라 합니다.

미국의 상선인 제너럴 셔먼호가 대동강을 거슬러 올라와 평양에서 통상을 요구하며 행패를 부리다가 평양의 군민과 충돌하여 불태워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 사실을 뒤늦게 안 미국은 5척의 군함으로 강화도를 공격하였다. 미군은 초지진 등을 점령하였으나, 어재연 장군이 이끄는 조선군이 강력하게 저항하자, 마침내 물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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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지진을 공격하는 미군
초지진을 공격하는 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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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미양요 때의 격전지인 광성보(포대)
신미양요 때의 격전지인 광성보(포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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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화비를 본 당시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하였을지 이야기해 보자.

두 차례에 걸친 서양의 침략을 물리친 흥선 대원군은 서양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다지기 위해, 전국에 다음과 같은 내용을 새긴 척화비를 세웠다.

서양 오랑캐가 침범하였을 때 그들과 싸우지 않으면 화해하는 것이요,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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척화비
척화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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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척화비의 내용을 보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되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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흥선 대원군은 백성들에게 서양의 침략을 일깨우고, 서양과 교류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더욱 굳혔다. 그러나 서양의 침범을 막기 위해서는 서양의 기술을 익혀 나라의 힘을 길러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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