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을 침략하는 데에 걸림돌이 된 청나라를 청⋅일 전쟁으로 물리친 일본은 승리한 대가로 중국의 요동 반도를 차지하였고, 조선에 대한 침략의 손길을 더욱 노골적으로 뻗기 시작했다. 이에 우리 나라는 서양 여러 나라의 힘을 이용하여 일본의 침략을 막고자 하였다. 명성 황후는 외교적 노력을 통해 러시아로 하여금 프랑스와 독일을 끌어들여 일본을 압박하게 하였다. 그 결과 일본은 요동 반도를 청나라에 돌려주고 조선에 대한 침략의 기세를 누그러뜨릴 수밖에 없었다. 일본은 조선에서의 불리해진 정세를 되돌려놓기 위해 경복궁에 침입하여 명성 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질렀다.
1895년, 한 무리의 일본인들이 경복궁에 침입하여 왕비의 처소인 옥호루를 포위한 후,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는 데에 방해가 되는 명성 황후를 시해하였는데, 이 사건을 을미사변이라 합니다.
명성 황후 시해 사건을 겪은 고종은 1896년 초에 러시아 공사관으로 처소를 옮기고, 다시 러시아의 힘을 빌려 일본 세력을 물리칠 방법을 찾았다.
이러한 때에 갑신정변 당시 미국으로 망명했던 서재필이 귀국하였다. 그는 독립 협회를 설립하여 나라의 자주 독립을 목적으로 한 구국 운동을 펼쳐 나갔으며,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러 있는 고종의 환궁을 요구하였다.
▶ 독립 협회를 이끈 사람들의 주장과 활동에 대하여 조사해 보자(사회과 탐구 97쪽).
국민의 여론에 따라 1년 만에 경운궁(오늘날의 덕수궁)으로 돌아온 고종은 조선이 자주 국가임을 국내외에 널리 알리기 위해 나라 이름을 대한 제국으로 고치고 황제 즉위식을 거행하였다.
대한 제국은 자주 국가로서 필요한 여러 가지 개혁을 추진하였다. 상공업을 발달시키기 위해 회사를 설립하고 실업 학교도 세웠다. 또, 외세의 침략에 맞설 수 있는 근대적 군대를 갖추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