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초등학교 사회 6-1(7차)
  • 3. 대한 민국의 발전
  • (1) 나라를 되찾기 위한 노력
  • [1] 총과 펜을 들어 싸운 조상들
  • ● 우리 민족이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한 일에 대해 알아보자.

● 우리 민족이 일제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한 일에 대해 알아보자.

만일, 윗집에 사는 사람과 아랫집에 사는 사람이 우리 집에 와서 우리 집 물건을 서로 차지하려고 싸운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이와 같은 일이 약 100년 전에 우리 나라에서 일어났다. 1894년에는 청나라와 일본, 1904년에는 러시아와 일본이 우리 나라를 서로 지배하기 위해 전쟁을 벌였는데, 이 두 차례의 전쟁에서 모두 일본이 승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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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일 전쟁(일본군에 의해 격침된 청의 군함)
청⋅일 전쟁(일본군에 의해 격침된 청의 군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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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일 전쟁(인천에 상륙하는 일본군)
러⋅일 전쟁(인천에 상륙하는 일본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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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시 우리 나라와 주변 여러 나라와의 관계를 살펴보고, 우리 나라가 어떤 처지에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먼저, 청⋅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우리 나라에서 청나라의 영향력을 배제시켰고, 러⋅일 전쟁 중에는 우리 나라에 군대를 주둔시켰다. 이후 러⋅일 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고종 황제와 일부 대신들의 반대를 힘으로 누르고 우리 외교권을 빼앗은 이른바 ‘을사조약’을 맺었다. 조약의 내용이 알려지자 온 국민들은 일제의 침략을 비난하면서 일제에 맞서 싸우고자 일어났다.

▶ 을사조약이 체결된 후, 우리 민족은 나라를 지키기 위하여 어떤 방법으로 일본에 저항했는지 알아보자(사회과 탐구 10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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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자결한 민영환
을사조약의 부당함을 알리고 자결한 민영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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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 황제는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 평화 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일제의 침략을 세계 여러 나라에 알리고자 했대. 또, 신문들은 을사조약을 비난하는 기사를 실어 우리 민족의 항일 정신을 고취시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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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그 특사
헤이그 특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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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일야방성대곡(이 날에 목놓아 통곡하노라)

“오! 슬프도다. 개, 돼지만도 못한 우리 정부의 대신들이 자기 혼자 잘살고 부귀를 누리는 데 눈이 어두워 위협을 이기지 못하고 나라를 팔아먹은 도적이 되었으니, 4천년 강토와 5백년의 사직을 다른 나라에 갖다 바치고, 2천만 백성을 다른 나라의 노예로 만들었으니……. 원통하고 원통하다! 동포여! 동포여!”

을사조약 체결에 대하여 장지연이 쓴 황성신문 논설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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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장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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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을사조약 이후 의병 운동이 어떻게 전개되었는지 알아보자(사회과 탐구 108쪽).

1890년대 이후 일제의 침략에 맞서 일어난 의병 운동은 을사조약을 계기로 더욱 거세어졌다. 처음에 일어난 의병은 무기나 전투 능력면에서 일본군에 맞서 싸울 힘이 부족했지만, 자기 고장의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점을 활용하여 일본군에 큰 피해를 입혔다.

1907년의 군대 해산 이후에는 그 군인들 중의 일부가 가담하면서 의병의 전투력이 강화되어 일본군과 큰 싸움도 치를 수 있었다.

을사조약 이후 의병 운동이 거세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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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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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부대의 활동
의병 부대의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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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연이네 반 선생님께서는 안규홍이라는 의병장 이야기를 해 주셨다. 서연이는 남의 집 일을 하며 어렵게 살던 사람들까지도 나라를 위해 일어섰다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라 사랑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되었다.

안담살이 의병장

1909년 1월 9일, 대한매일신보에 “십 수년 동안 남의 집 일을 하며 살아온 한 젊은이가 근처의 머슴 1백여 명을 모아 연설하기를, ‘우리는 남의 집 머슴이지만 국민이기는 마찬가지인데, 나라가 위급한 때를 당하여 농가에서 구차하게 살겠는가.’하며 의병을 일으켰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전라 남도 보성에서 1백여 명의 머슴들을 의병으로 나서게 한 이 젊은이가 바로 안규홍이다. 사람들은 그를 ‘담살이’라고 불렀는데, ‘담살이’란 어린 머슴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은 가난한 농민들과 함께 곳곳에서 큰 전과를 올리면서도 일반 백성들에게는 조금도 피해를 주지 않았기 때문에 백성들도 이들의 의병 운동을 적극적으로 도와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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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담살이 의병장’ 이야기를 들은 서연이네 반에서는 의병 운동에 대해 좀더 자세히 공부해 보기로 하였다. 먼저, 의병 운동과 관련된 중요한 사건들을 모아 연표로 정리해 보았다.

연표로 본 의병 운동

⋅ 을미사변, 단발령 1895 ⋅ 명성 황후의 죽음에 분노하여 의병이 일어남.
  1900  
⋅ 을사조약 1905 ⋅ 을사조약 이후 의병 운동이 활발해짐.
⋅ 군대 해산 1907 ⋅ 해산된 군인들이 의병에 합류함.
  1909 ⋅ 안중근 의사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함.
⋅ 일제의 강제 합병 1910  
  1915 ⋅ 일본군의 대규모 공격으로 국내의 의병 운동은 점차 약해지고, 국외로 망명한 의병들이 독립군으로 재정비됨.
⋅ 3⋅1 운동 1919 ⋅ 대한 민국 임시 정부 수립
  1920 ⋅ 청산리 대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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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중근 의사
안중근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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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의병들에 대하여 조사해 보기 위하여 다음과 같은 목록을 만들었다.

⋅ 의병들이 사용한 무기

⋅ 의병들의 작전

⋅ 의병들의 신분, 직업

⋅ 대표적인 의병장

나는 어떤 신분의 사람들이 의병에 참가했는지 조사해 봐야지.

나는 대표적인 의병장을 조사해 볼 테야.

군대 해산 후, 의병 운동이 전국적으로 전개되었대.

사진 속의 의병들이 어떤 신분, 직업의 사람들이었을지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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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 부대
의병 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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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들이 사용했던 화승총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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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간인 의병들은 무기와 복장은 통일되지 않았지만 용감하게 싸웠대.

의병 운동에 대한 공부를 마무리하면서 서연이는 궁금한 점을 선생님께 여쭈어 보았다.

“1910년에 나라를 빼앗긴 후, 의병들은 어떻게 되었나요?”

“일제의 탄압이 심해지자 의병들은 국외로 망명하여 독립군으로 활동하였단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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