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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Ⅱ장 부족 사회의 문화
  • 2. 부족국가의 형성과 분포

2. 부족국가의 형성과 분포

만주에서 반도에 걸쳐 살고 있던 우리 조상들은 씨족의 테두리에서 차츰 좀 더 큰 덩어리로 뭉치어 지게 되었다. 여러 씨족은 안으로 공동의 생활을 하며, 생활이 발전함에 따라 부계제 사회를 이루며, 밖으로 힘을 뻗쳐 나아가려 함에서, 힘 센 씨족은 다른 씨족을 합치어 부족 사회를 형성하게 되었다. 씨족에서 더 커진 부족 사회에서는 각 씨족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활동하며, 각 씨족에서 어른을 뽑아서 부족 회의를 열고, 여기서 부족의 어른(長)을 골랐음으로, 부족의 전쟁⋅제사⋅형벌 등 중요한 것은 부족의 연합(聯合) 회의에서 결정하였다.

단군 신화에 보이는 고조선은 송화강(松花江) 연안, 하르빈(哈爾賓)을 중심으로 서쪽 봉천 지방⋅요동(遼東) 방면에서 동으로는 길림(吉林)⋅연해주 지방에 걸친 지역에 있었고, 뒤에는 반도에 걸치어 들어 왔다. 이 고조선은 일찍부터 활동하여, 중국에는 진막번조선(眞莫番朝鮮, 司馬遷의 史記)이라 알려졌으니, 일찌기 중국의 연(燕)을 동몽골 지방으로 내몰고, 지금 북경(北京) 부근의 화북(華北) 지방에서 산서(山西)의 대동(大同) 근방까지 차지하며, 연왕에게서 태자(太子)를 볼모로 잡고, 세폐(歲幣)를 받게 되었더니, 태자는 돌아가 왕이 되고, 장군 진개(秦開)를 태자라 속이어 볼모로 보내서 국내를 탐지시키었다. 진개가 모든 정세를 탐지해 알고 도망쳐 돌아가서 조선에 침입하여 화북 지방과 요서(遼西)⋅요동을 차지하며 이 곳에 5군(郡)을 두고, 고조선의 서남을 막았다. 그러나 고조선은 다시 동몽골을 들이쳐 위세를 사방에 휘날리었으나, 조선왕 준(準) 때 위만(衛滿)이 도망하여 조선으로 왔으므로, 준왕은 위만을 요서에서 살게 하였다. 위만은 조선⋅중국의 망명(亡命) 죄인과 불평을 품은 사람들을 모아 병력을 기르더니, 점차 강성하여지자 왕검성(王儉城)을 들이치고 도읍을 하매 준왕은 물길(海路)로 남쪽 월지국(月支國)에 가서 살게 되었다. 이곳이 말한(馬韓 Mal-khan, “마한”은 한자에 좇는 음이다)이다. 이때 낙동강(洛東江) 웃녘(右岸) 경상도 일대에 진한(辰韓)이 있었고, 하류 유역을 중심한 아랫녘(左岸)에는 변한(弁韓)이 있었다. 북으로 만주와 조선 반도 동북녘에는 북부여(北夫餘)가 하르빈 지방에 있었고, 동부여는 훈춘(琿春) 지방에 있었다. 동부여의 한 가닥이 함흥(咸興)을 중심으로 하고 있었고, 연해주와 함경도에 걸쳐 옥저(沃沮)가 있었다. 연해주 방면은 숙신(肅愼)의 옛터로 북옥저가 있었고, 함경도 쪽에 예족(濊族)인 남옥저가 있었으니, 이것은 또 동옥저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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