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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Ⅳ장 통일 신라와 발해의 문화
  • 4. 문학과 예술

4. 문학과 예술

신라가 통일국가로 발전하며 외래의 여러 사상의 영향을 아울러 조화시킨 노래는 사뇌가(詞腦歌), 즉 향가(鄕歌)이다. 지금은 삼국유사에 전하나, 진성왕(眞聖王) 때(888?) 위홍(魏弘) 각간(角干)과 대구(大矩)화상이 수찬(修撰)한 시가집 삼대목(三代目)은 책 이름만 전하여 내용을 알 수 없다. 이 끼쳐진 것은 모두 한자(漢字)를 빌어 이두문(吏讀文)으로 기록하였다.

願往生歌 원왕생가
月下伊底亦 하 이데
西方念丁吉賜里遣 서방(西方)까장 가샤리고
無量壽佛前乃 무량수불전(無量壽佛前)에
腦叱古音多可支白遣賜立 닛곰다가 고샤셔
誓音深史隱尊衣希仰支 다딤 기프샨 존(尊)어해 울워리
兩手集刀花乎白良 두손 모도호
願往生願往生 원왕생(願往生) 원왕생(願往生)
慕人如白遣賜立 그릴사람 잇다 고샤셔
阿邪此身遺也置遣 아으 이몸 기텨두고
四十八大願成遣賜去 사십팔대원(四十八大願) 일고 쌸가

〈노래의 대강의 뜻〉

달아 이제 서방까지 가시나이까.

무량수불전에 말씀 사뢰다가, 맹서 깊으신 불전에 우러러 두 손 모아 사룁기를, 원왕생 원왕생 그리운 사람 있다 사뢰 줍소서. 아! 이몸 버려두고 사십팔대원을 다 이루어 주실가 하나이다.

문무왕 때(661~681) 광덕(廣德)의 처는 분황사(芬皇寺)의 비(婢)로 불도(佛道)에 정진하여 자기의 신앙 생활의 감정을 이 노래에 붙였던 것이다. 이렇게 이두문으로 전하는 노래 외에 가곡(歌曲) 이름만이 삼국사기⋅삼국유사⋅고려사 악지 등에 전하는 것도 있다. 아무래도 신라의 문학으로는 향가를 빼고는 말하기 어려웁다.

음악은 3죽(竹) 3현(絃)이 유명하니, 3현은 현금(玄琴)⋅가야금(伽倻琴)⋅비파(琵琶)요, 3죽은 대금(大笒)⋅중금(中笒)⋅소금(小笒) 등으로 음곡(音曲)에는 3죽에 7조(調)가 있고, 3금에 각기 여러 가지 곡(曲)이 있었으며, 더욱 가야금에는 우륵(于勒)의 곡이 유명하였으나, 지금 전함이 없다. 또 궁정에서 음악 가무(歌舞)에 종사하는 사람을 가척(笳尺)⋅무척(舞尺)⋅가척(歌尺)⋅금척(琴尺)이라고 불렀다.

통일기의 능묘의 건조(建造)에 석조물의 응용이 공예 미술로 중요한 것이다. 이 전에도 분묘에 외호렬석(外護列石)을 포치(布置)시키었으나, 통일기에 들어서 그 석조물의 조각이 미술품으로 볼만큼 우수하게 이루어진다. 12지 신상으로 지금 완전히 남아 있는 성덕왕릉의 신석(申石)의 상(像)은 무장(武裝)의 웅건한 기품을 잘 조각하였으니, 무렬왕(武烈王) 능의 거북(귀부=龜趺) 등과 함께 석주(石柱)⋅석조 문무관(文武官)⋅석사(石獅) 등은 아름답고 묘한 석공 기예의 우수함을 보여준다.

불교의 융성과 함께, 가람의 배치도 점점 조화있게 되어, 불국사는 통일기에 들어와서 모든 규모있는 건축이 완성되어 신라 불교 사상을 상징하는 미의 세계를 이루었으니, 금당 좌우에 탑을 세우는 이탑식으로 전개되었다. 이런 것은 사천왕사(四天王寺)⋅망덕사(望德寺)⋅감은사(感恩寺)도 같은 것이다. 더욱 불국사의 석가탑(釋迦塔)과 다보탑(多寶塔)은 단조로운데 담긴 그윽한 미와 복잡한데 통일의 조화를 지닌 미를 표현한 것으로 이것은 신라 사람의 안정된 아름다운 예술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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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국사 석가탑(佛國寺 釋迦塔)
불국사 석가탑(佛國寺 釋迦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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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불교의 발흥과 사원 건축에 따라 조불(造佛), 범종(梵鐘)의 주조(鑄造), 와전(瓦塼), 각종의 석조물 등이 제작되었다. 석굴암(石窟庵)의 구축과 그 안에 안치한 본존상(本尊像)과 주벽(周壁)의 여러 상은 면상(面相)의 단려(端麗)와 표정의 우아(優雅)⋅의문(衣文)⋅수법의 우려(優麗)함은 신라 예술의 극치(極致)이다. 경주 일대에 산재하는 석불에 훌륭한 것이 많으니, 남산(南山) 일대의 것은 범위와 규모로도 특이하다. 동상(銅像)으로 등신상(等身像)은 백률사(栢栗寺)의 약사여래(藥師如來)가 원숙한 기교로서 제작된 것이요, 철상(鐵像)으로는 도피안사(到彼岸寺, 江原道)의 노사나(盧舍那) 불상이 당시의 대표적인 작품이다. 범종으로는 봉덕사종이라는 성덕왕 신종(神鐘)과 상원암(上院庵, 江原道 平昌郡) 것이 유명한데, 성덕왕 신종은 그 구조가 조선식으로 그 기술은 가장 뛰어난 수법을 썼으니, 거대하면서도 풍려(豊麗)함을 지니며, 더욱 비천상(飛天像)⋅당초문(唐草文)의 아려(雅麗)하고 풍미(豊美)한 것과 그 소리의 맑고 깨끗하며 영묘(靈妙) 함은 또한 신라 예술의 대표이다. 와전(瓦塼)은 통일 시대에 이르러서는 화려한 문양(文樣)을 쓰며 특색있는 것을 만들었다. 여기에는 풍려 우아한 연화문(蓮華文) 계통과 화려한 당초문(唐草文) 계통이 있어 각양으로 신라 와전의 특색을 빚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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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천왕사 유전상(釉塼像)
사천왕사 유전상(釉塼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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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본존상(石窟庵 本尊像)
석굴암 본존상(石窟庵 本尊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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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굴암 십일면 관음상(石窟庵 十一面 觀音像)
석굴암 십일면 관음상(石窟庵 十一面 觀音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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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덕사 종(奉德寺 鐘)
봉덕사 종(奉德寺 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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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은 금속 공예에나, 석조 공예에서 보는 이 아름다움은 신라 사람이 지닌 섬세한 손 재주에서 나온 기공(技工)의 우수성(優秀性)과 그들의 화려함을 사랑하는 마음에서 우러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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