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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조선 왕조의 성립과 그 발전

1. 조선 왕조의 성립과 그 발전

조선의 개국

이성계는 고려 말기의 빈번한 외적의 침구를 물리쳐서 그 이름을 떨쳤다. 그리고, 명⋅청 교체라는 대륙 정세의 변동에 편승하여 정권을 손에 넣은 후, 토지 개혁의 실시를 통하여 민심을 거두더니, 마침내 신세력의 추대를 받아 선양의 형식으로 조선 왕조를 개창하였다(13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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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조 이성계
태조 이성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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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의 개창은 역성 혁명에 의한 왕조의 교체에 불과하여, 사회 구조의 본질적인 변혁은 없었다. 태조는 처음 고려의 옛 제도를 그대로 도습하여 영합주의적 정치를 폈으나, 차차로 새 국가 체제를 강화하였다. 그리하여, 국호를 조선이라 정하고, 한양으로 천도하였다.

그리고, 조선의 기본 국책은 억불 숭유, 사대 교린, 농본 민생의 삼대 정책이었다.

왕권의 확립

태종은 태조의 삼대 정책을 실천에 옮겨 왕권 확립에 힘썼다. 즉, 사병을 혁파하였고, 국도를 한성(지금 서울)으로 확정하였으며, 호패제를 실시하는 등 집권력을 강화하는 한편, 사찰 정리, 5부 학당 설립, 유교 예속 생활의 여행을 통하여 유교 사회 건설에 힘썼다.

세종은 전제상정소를 두고 토지 제도와 조세 제도를 개편하는 한편, 민족 문화 육성에 헌신하였다. 그리고, 압록강 상류와 두만강 주변 지역으로 국세를 확장하여 동북 6진과 서북 4군을 설치하여 오늘날에 볼 수 있는 국토를 완성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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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군 6진도
4군 6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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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후, 세조는 북변에서 벌어진 이징옥의 난과 이시애의 난을 진압하여 지방 세력을 꺾고 왕권을 폈으며, 민족 문화 발전에 힘쓰는 한편, 국초부터의 잡다한 법전의 집대성을 꾀하였다.

호학의 군주 성종은 유교 중심의 정책을 더욱 강화하였고, 전대부터의 법전 집대성의 작업을 계속하여 경국대전을 완성하였다. 경국대전은 중앙 집권적 봉건 관료 국가로서의 국가 구조와 국가 생활을 법제한 것으로서, 이에 비로소 조선 왕권 확립 과정이 일단락지어졌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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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국대전
경국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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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권적 정치 구조

조선의 정치 제도는 국왕을 중심으로 한 중앙 집권적 정치 조직이었다. 관료는 과거 제도에 의하여 선임되었고, 봉건적 수권 방식에 의한 토지 제도에 의하여 경제 생활이 보장되었다.

중앙에는 3정승의 합좌 기관인 의정부가 있어 백관과 국정을 총리하였으며, 그 밑에 6조를 두어 국무를 분장 집행하였다. 이 밖에도 중앙에는 왕명 출납 기관으로서 승정원, 특별 재판 기관인 의금부, 감찰 기관인 사헌부, 간쟁 기관인 사간원, 역사 편찬 기관인 춘추관과 문화 기관인 홍문관 등의 기관이 있었다. 서울인 한양에는 한성부의 제도를 실시하였고, 전국은 8도로 나누었는데, 도는 다시 도호부, 부, 목, 군, 현 등의 지방 행정 단위로 구분하였다. 도의 장관인 관찰사(또는 감사) 그 하부 지방 행정 단위의 장인 수령은 모두 중앙에서 임명하여 파견하였으나, 그 밖의 말단 행정 관리는 향리를 6방에 분속시켜 실무를 담당하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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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초기의 행정 구역도
조선 초기의 행정 구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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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제와 봉수⋅역마제

국가 최고 군사 기관으로는 중앙에 오위 도총부가 있었으며, 그 밑에 5개 군단이 예속되었다. 지방에는 각 도에 병영과 수영을 두어 국방을 담당하게 하는 한편, 각 요지에는 진, 보 등을 두어 국방에 대비하였다.

한편, 국가적 긴급 사항의 연락을 위한 봉수제와 공문 전달, 공문 수송, 출장 관리를 위한 역마제를 두어 전국 각지에서 서울에 집중되도록 편성되었다. 오위의 병사인 갑사나 정병, 지방 영진의 진수병은 직업적인 군인도 있었으나, 전국 장정의 번상으로 충당되었으며, 그들 군인에게는 봉족이 주어졌다.

교육과 과거 제도

서울에는 최고 학부로 성균관이 있었고, 그 하부 교육 기관으로는 사학(동⋅서⋅남⋅중)이 있었다. 지방 각 고을에는 향교가 설치되어 양반 자제의 교육을 담당하였다. 이와는 별도로, 서민층은 부락마다 설치되었던 서당에서 읽기, 쓰기, 셈하기의 초등 교육을 받았다. 주로 중인 계급이 담당하던 기술직의 교육은 의학, 산학, 율학, 역학, 음양학 등의 교육 기관에서 실시되었다. 관리를 등용하는 과거에는 문관 고시인 문과와 무관 고시인 무과, 그리고 기술관 고시인 잡과의 3종이 있었는데, 문과가 가장 중시되었으며, 주로 유학의 교양을 시험하였다. 문과는 다시 자격 고시인 소과와 채용 고시인 대과로 구별되었는데, 소과는 생원 자격을 부여하는 명경과와 진사 자격을 부여하는 제술과로 되었다. 무과는 무예를, 잡과는 기술 기능을 시취하였다. 과거는 3년에 한 번 실시하는 식년시가 원칙이었으나, 그 밖에 여러 가지 부정기 고시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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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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