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의 경제적 침투

정치적 침투를 위하여 갖은 수단을 다하던 일본은 경제적 침투에도 적극적이었다. 일본 상인들의 활동에 따라 일본 상품과 일본 상인이 중개 무역하는 서양 상품의 교역은 급격히 늘어났고, 다른 어느 나라보다도 상선의 내왕이 잦았으며, 개항장에 설치되었던 상관의 수도 많았다.

일본에 대한 우리 나라 수출 상품은 주로 쌀, 콩 등의 식량이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자본주의의 발달을 위하여 우리 나라를 생산품 소비 시장 및 식량 공급지로 지목하였던 것이다. 우리 농민들은 일본 상인의 손을 거쳐 들어오는 신식 양품, 생활 필수품을 구입하기 위하여 유일의 생산품인 미곡을 낼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미곡은 일본 상인의 손으로 들어갔다. 부산과 원산에는 일인들의 곡물 거래소가 설치되었다.

곡물 거래에 광분하게 된 일본 상인들은 우리 농민의 곤궁한 생활에 파고들어, 입도 선매 또는 고리대 방법에 의한 곡물 수집을 통하여 이중 이득을 추구하였으므로, 우리 농촌은 더욱 급속도로 피폐하여 갔다. 1889년 함경 감사 조병식이 선포한 방곡령은 우리 농민을 위한 자위책이었던 것인데, 일인들은 이에 부당한 압력을 가하여 손해 배상까지 받아 가는 억지를 부리기까지 하였다.

농촌 사회의 동요

외국 상품에 의한 외환 사정의 악화, 가내 공업의 쇠퇴와 악질 곡물 거래상에 의한 토지의 갈취 등으로 목가적 농촌 사회의 경제 사정은 날로 악화되었다. 이러한 농촌 사회를 더욱 악화시킨 것은 정부의 농촌 수탈이었다. 개국에 따른 국가 재정의 증대에 고민한 정부는 일부를 외국 차관에 의하여 메워도 보았으나, 결국은 봉건적 생산 담당자이던 농민에 대한 주구에 의지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리하여, 각종 명목의 중세가 부과되어 농촌 경제에 중압을 가하였으므로 농민의 불평은 날이 갈수록 커 갔고, 또 배외 사상이 성장하여 마침내는 각지에서 민요가 잇달아 일어나게 되었다.

동학 세력의 성장

교조 최제우의 원사(억울한 죽음을 당함) 후 정부의 격렬한 탄압으로 한때 잠잠하였던 동학은, 2대 교주 최시형의 치밀한 지도하에 포, 접에 의한 교단 조직이 정비되고, 용담가사, 동경대전 등 교서의 간행과 전교 활동의 활발에 따라, 현실 생활에 허덕이던 농민층에 은연중에 파고들어 급속하게 그 교세가 자라났다. 교세가 자라난 동학은 교조 신원 운동을 전개하여 그 위세를 떨쳤다. 1892년 삼례에서 교조 신원과 탄압 반대의 기치를 들었으며, 이에 서울에서 복합 상소 운동을 일으켰고, 다시 보은에서 수만의 신도가 참집하여 교조 신원과 척왜양창의로 그 운동 방향을 확대시켰다.

1815년 이후, 비록 소규모적이었으나 계속 일어났던 민요는 동학과 직접 관련되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정부와 일본에 대한 반항 의식은 동학과 농민층에 공통적인 것이었으므로, 동학은 이들 계층을 흡수함으로써 커다란 정치적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었다.

동학 혁명 운동

1894년, 고부 군수 조병갑의 학정에 반항하여 일어난 고부 관아 습격 사건을 계기로 동학 혁명 운동이 폭발되었다. 전봉준의 영도 아래 벌어진 고부의 소란은 민요에 지나지 않았지만, 정부의 부당한 수습 방안에 분격한 동학 교도들의 3월 기포는 제폭 구민, 보국 안민을 내세운 동학 혁명 운동으로 확대되었다. 혁명 운동은 충청, 전라도로 파급되어 동학군은 황토현에서 관군을 격파하였으며, 전주를 점령하고 전라, 충청 각지를 장악하였다. 동학군은 청국의 후원을 받게 된 정부와의 협상으로 일단 해산하였다. 그러나, 이 분란 중에 벌어진 청⋅일 전쟁이 일본에 유리하게 전개되어 친일 정부가 서울에 조직되자, 동학도들은 척왜, 반침략을 고창하고 9월 기포로써 이에 맞서게 되었다. 동학 교세는 삼남 지방은 물론 경기에까지 미쳤고, 공주, 태인 등 각지에서 우수한 일본군을 격파하였으나, 전봉준이 순창에서 체포된 후 차차 진압되었다.

동학 혁명의 의의

비록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나, 동학 혁명 운동은 여러 모로 중대한 의의를 지녔다. 이는 역사상 최대 규모의 농민 혁명 운동이었으며, 백성들에 의한 국가 모순 타개 운동이 동학교와 결부되어 일어났던 것이다.

3월 기포는 비정에 시달리던 백성들의 사회 모순 타파 운동이었고, 9월 기포는 백성들의 국가 위기 의식과 결부된 반일 민족 운동이었던 점에 민족사적 의의가 크다. 또, 안으로는 갑오경장, 밖으로는 청⋅일 전쟁의 계기를 이루어 민족사는 물론 세계사에 큰 변화를 촉구하였다. 그러나, 혁명을 영도해 나갈 근대적 지도층이 형성되지 못하였고, 밖으로 청⋅일 양국 군의 간섭으로 마침내 뜻대로 되지 못하였다.

갑오경장

동학 혁명 운동 발생의 역사적 바탕은 사회 모순과 정치 문란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국내에서 개혁을 요망하는 소리가 높았고, 갑신정변을 일으켰던 일부 지식인들은 청⋅일 전쟁의 진전에 따라 무력적으로 우위에 서게 된 일본의 세력을 이용하여 마침내 우리 역사상 최대 규모의 근대화 작업인 갑오경장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군국기무처라는 최고 정부 기관을 설치하여 정치, 사회, 경제, 문화면에서 급속한 개혁이 추진되었다. 의정부, 궁내부의 설치로 국무와 궁무를 양분하여 근대 국가 정치 체제를 마련하고, 과거제를 폐지하여 새 관료 조직을 편성하였으며, 지방관이 장악하던 재판권을 독립시켜 재판소를 두어 행정, 사법 양권을 분리하였고, 경찰 제도를 일원화하였다.

경제적으로는 은본위제에 의한 화폐제를 실시하고, 조세의 수납을 금납제로 개정하였으며, 징세 사무를 보는 세무서와 세관사를 설치하였다. 한편, 재정 집행의 일원화를 위하여 탁지부의 기능을 강화하였다.

사회 개혁에도 의욕이 왕성하여 봉건적 신분제의 폐지, 법률상에 있어서의 평등, 사회 폐습의 타파를 위하여 노비 천적의 폐기, 천민 신분의 해방, 연좌법 폐기, 조혼 금지, 재가 허용, 고문 금지, 의복제의 간소화 등을 실시하였다. 한편, 이 때부터 개국 기원을 사용하게 되었다.

홍범 14조

한때 군국기무처 고문으로 갑오경장에 관여하였던 대원군이 지나친 일본의 간섭에 반기를 들게 되자, 그를 정계에서 내몰고 박영효, 서광범을 중심으로 더욱 과감한 개혁을 추진하게 되었다. 개혁의 근본 요강으로 홍범 14조를 엮어 이를 국민 앞에 공고하는 한편, 종묘에 서고하여 근대 국가 건설을 선포하였다. 청국으로부터의 자주 독립, 왕실 질서의 확립, 국정에서의 왕실의 격리, 관제의 정비, 세제의 개정 및 회계 예산제의 실시, 인재 양성 및 등용, 군제의 개혁과 법제의 정비, 생활의 조직화 등을 내포하고 있는 홍범 14조는 근대 국가 운용의 근본이 될 근대 의식의 산물이었다. 원래, 우리 나라의 근대적 개혁을 바라는 것이 아니었던 일본 세력의 압력으로 모처럼의 개혁 운동이 국가 장래를 바꾸어 놓는 실효를 거두지는 못하였으나, 갑오경장은 우리 역사상 최대의 개혁 운동이었으며, 봉건 체제를 타파하고 근대화를 지향하는 데 중대한 역사적 의의를 가진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