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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Ⅰ. 고대 사회
  • 1. 선사 시대의 문화
  • (2) 한국 청동기 문화의 발달

(2) 한국 청동기 문화의 발달

청동기 문화와 사회의 변동

빗살 무늬 토기 제작인들 다음에 무늬 없는 토기 제작인들이 나타났다. 이들은 무늬는 없으나 좀더 크고 여러 가지 형태를 가진 그릇들을 만들었다. 그 중에도 그릇의 위가 넓고 바닥이 좁은 토기를 많이 만들었다. 그리고 또, 여러 가지 모양의 돌도끼, 돌창, 반달 모양의 돌칼 등 석기를 만드는 데 뛰어난 솜씨를 가졌다. 우리 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이들 무늬 없는 토기 제작인들에 의해서 건설되었다.

우리 나라의 청동기 문화는 대략 기원전 10세기경부터 시작되었다. 이들이 만든 초기의 비파형 청동검은 뒤에 세형 청동검으로 발달하였으며, 이 밖에 세문경, 방울 달린 청동기, 청동 도끼나 그 밖의 장식품 등이 우리 나라 각지에서 출토되고 있다. 우리 나라의 청동기는 아연이 합금되어 있는 점이나 그 형태로 보아,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북방 계통의 청동기 문화를 받아들인 것으로, 장식에 있어서는 스키토 시베리언 계통의 동물 양식을 즐겨 썼다.

한편, 이 시기에는 농경 기술이 보다 발달하여 돌보습이나 돌괭이, 나무로 만든 쟁기로 밭갈이를 하고, 조, 피, 기장, 그 밖에 수수, 보리, 콩 등을 재배하였다. 그리하여, 신석기 시대보다 농업의 비중이 크게 증가하였고, 수렵과 고기잡이도 아울러 발달하였다.

또, 이 시기에는 족장들의 세력이 강해지기 시작하였고, 특히 청동으로 만든 칼과 창으로 무장한 부족들은 이웃 부족들을 정복하여 공납을 받아들이게 되어, 지배와 피지배 관계가 성립되었다. 이와 같이, 우세한 부족들은 스스로 하늘의 아들이라고 믿는 선민 사상을 가졌으며, 거대한 고인돌이나 적석총, 석관묘를 만들고, 신성 지역의 표시로서 선돌을 세우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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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기 시대 주거지
청동기 시대 주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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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의 형성

어느 지역, 어느 나라 역사에 있어서나, 하나의 종족이 인근 종족과 교섭 없이 고립하여 문화를 발전시키고 민족을 형성하는 경우는 없다. 우리 민족도 일찍부터 더 넓은 지역에 걸쳐 많은 문화와 교류를 가졌고, 다른 민족과 오랜 동안의 교섭 과정을 거쳐 성장해 온 것이다.

선사 시대의 동 아시아에는 황하 유역의 한족(漢族) 문화권과 양쯔 강 이남의 화남 문화권, 몽고 지역의 북방 문화권, 회수(화이허 강) 유역, 산뚱 반도, 발해(뽀하이)만, 한반도를 연결하는 동방 문화권이 있었다. 동방 문화권의 요하(랴오허 강) 유역이나 한반도 지방은 북방이나 중국 방면에서 오는 여러 문화를 받아들이는 위치였고, 회수 유역과 산뚱 반도에서는 일찍부터 남방 문화권과 교섭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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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시대 문화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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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뚱 반도와 회수 유역에 있었던 동이족(東夷族)은 중국 춘추 시대와 전국 시대를 거치는 동안 살기 좋은 농경지를 찾아 점차 만주와 한반도로 이동하게 되었다.

동이족 중에 무늬 없는 토기 문화의 기반 위에서 청동기 문화를 성립시킨 한(韓)족은 언어학상으로는 알타이 어계에 속하는 퉁구스족의 한 갈래라 한다. 이들이 농경 문화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하여 크게 발전하면서 우리 민족의 주류를 형성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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