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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권의 쇠퇴

교황의 권위가 십자군을 고비로 하여 떨어지기 시작하였으며, 각국의 왕권이 강대해지면서부터는 더욱 그러한 현상이 나타났다. 14세기 초에 프랑스 왕 필립 4세는 교황 보니파키우스 8세와 싸워서, 국왕도 교황에게 복종하여야한다고 주장하던 그를 패배시켰다. 그 뒤 교황청은 남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졌다(1309). 그 싸움에서 프랑스의 성직자들은 국왕을 지지하였으며, 그럼으로써 프랑스 교회는 교황보다는 국왕에 속하는 국민적 교회로 나아가기 시작하였다. 그 뒤 약 70년 동안 교황은 프랑스 국왕의 세력하에 놓이게 되었으며, 마침내 아비뇽 이외에 로마에도 교황이 옹립되어 서로 대립한다는 암담한 사태가 계속되었다(교회의 대분열, 1378~1417).

이로 말미암은 교황의 권위의 실추와 아울러 날로 심해지는 성직자의 부패는 교회에 대한 비판과 그 혁신을 외치게 하였다. 14세기 후반에 영국의 위클리프는 성직자의 타락과 교회의 세속화를 비판하고, 성서만이 유일한 권위라고 주장하면서 교회의 개혁을 주장하였다. 그의 주장에 공명한 보히미아의 휘스도 교회의 혁신을 부르짖어 큰 영향을 끼쳤다. 교회는 이 난국을 타개하기 위하여 1414년에 콘스탄쯔 종교 회의를 소집하여 대분열에 종지부를 찍고 휘스를 화형에 처하였으나, 교회가 입은 타격은 너무나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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휘스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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