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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의 통일 정책

진의 쇠약기에 일어난 여러 세력 가운데 초의 항우와 한의 유방이 가장 유력하였다. 유방이 항우를 무찌르고 천하를 다시 통일하여(기원전 202) 한 나라를 세우고 장안에 도읍을 정하니, 이가 곧 한 고조이다. 고조는 진의 성급한 통일 정책의 실패를 거울삼아 중앙 집권적인 군현 제도와 친척이나 공신을 제후로 봉하는 봉건 제도를 조화시킨 이른바 군국 제도로써 통치하였다.

그러나, 황실은 제후의 힘이 커질 것을 두려워하여 기회 있을 때마다 여러 제후의 봉토를 몰수 또는 영주권을 박탈하여, 무제(기원전 141~87) 때에 이르러서는 진 제국보다 더 튼튼한 중앙 집권 체제의 국가를 이룩하였다. 무제는 중국 남서부의 미개 지역을 경략하여 여러 군현을 두었고, 서쪽으로는 하서 4군을, 동쪽으로는 한반도의 북서부에까지 세력을 뻗쳐 이른바 한의 4군을 두게 되었다. 무제가 죽은 뒤 선제 때에는 지금의 신쟝성까지도 지배하는 등 전성기를 누렸으나, 그 뒤 외척과 환관들이 세력 다툼을 일삼는 틈에 마침내 외척인 왕망이 나라를 빼앗아 신을 건국하였다(8~23).

그 뒤, 유수가 왕망의 신을 넘어뜨리고 뤄양을 도읍으로 나라를 세우니, 이가 곧 후한(25~220)의 광무제이다. 그 뒤 명제 때에 흉노의 세력을 누르는 등 중흥 정치가 베풀어졌다. 그러나, 3세기 초에 이르러 지방 호족들의 등장과 중앙의 외척과 환관들의 세력 다툼, 또 전국적인 반란이 잇달아 일어나 후한도 결국 멸망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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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한 광무제
후한 광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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