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3차 교육과정
  • 고등학교 세계사(3차)
  • Ⅲ. 동양 세계의 전개
  • 2. 중국 문화의 발전과 동서 문화의 교류
  • (1) 수⋅당의 발전
  • 당의 사회와 경제

당의 사회와 경제

태종으로부터 현종에 이르기까지 통지 체제의 정비, 빈번한 외국과의 문물 교류 등은 당의 상업을 크게 발달시켰다. 수도인 장안에는 동시와 서시의 큰 시장이 개설되었는데, 서시에는 주로 외국 상인들이 붐볐으며, 교역을 위하여 출입하였던 이들은 당의 복식과 음악에까지 영향을 끼쳤다. 특히, 꽝뚱 및  양조우 지방은 외국과의 무역으로 번영하였다. 이러한 상업의 발달로 8세기 초에는 일종의 어음인 비전이 나타나 지폐의 기원이 되었다.

확대보기
장안의 모습
장안의 모습
팝업창 닫기

양쯔 강 하류에서는 사탕, 차, 목화가 재배되어 일상 생활의 필수품으로 보급되었는데, 특히 차의 생산이 크게 발달하여 당 말에는 차세까지 부과할 정도였다.

한편, 당 중기부터 토지 매매의 특례가 인정됨으로써 토지 겸병에 의한 대지주가 나타났으며, 관료, 사찰, 도관의 토지 겸병도 증가되었다. 특히, 안녹산의 난에 따른 호적의 문란은 균전제의 붕괴를 촉진시켰고, 이 결과 장원의 발달을 보게 되었다.

장원의 경작은 전호, 전객 등으로 불리는 소작인에 의하여 이루어졌는데, 균전제의 붕괴로 토지를 잃게 된 농민들은 전호가 되는 수가 많았다. 이들은 비록 농작물 수확의 절반을 주인에게 바쳐야 하였으나, 장원 안에서는 주택과 소, 농기구, 종자를 빌릴 수 있었고, 또 국가에 대하여 토지세와 부역의 의무를 지고 있지 않아, 장원 안에서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소작제가 유행하였던 원인은, 지주들이 노예 노동을 사용하여 토지를 경작하는 것보다 이 소작제가 훨씬 능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경작 방법도 당에 이르러 전과 달리 조와 보리를 번갈아 재배하여 3년 4모작 또는 2년 3모작의 농법이 보급되었는데, 이는 지주의 수확 증가를 초래하였을 뿐만 아니라, 소작인의 수입도 올릴 수 있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