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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왕정

국가에 따라 차이는 있으나, 16세기로부터 18세기에 걸친 시기를 절대주의 시대라고 하며, 그 정치 체제를 절대 왕정 또는 절대 군주제라 한다.

절대주의 국가는 중세 후반부터 시작된 중앙 집권과 국가 통일로 성립하게 되었으며, 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 왕권이었다. 국왕은 봉건 제후를 굴복시키고, 지방이나 도시의 자치적인 특권을 타파하는 한편, 중앙 집권적인 통일 국가의 형성을 환영하는 시민 계급의 협력을 얻을 수 있었다. 이리하여 절대주의 국가에서의 왕권은 절대적인 권력을 가지게 되고, 중세 후반에 생긴 신분제 의회도 왕권 앞에 무력한 존재가 되었다.

이렇듯 왕권이 강대해지자, 이를 옹호하는 정치 사상이 나오게 되었으며, 그 대표적인 것이 왕권 신수설이었다. 이에 따르면, 왕권은 신으로부터 주어진 것이기 때문에 절대적이며, 신이나 국민은 이에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밖에, 프랑스의 보댕은 국왕을 가부장에 비하여 왕권의 절대성을 옹호하였고, 영국의 홉즈는 인간의 자연 상태는 만인 대 만인의 투쟁 상태이며, 사람들은 이를 종식시키기 위하여 계약을 맺어 주권자에게 모든 권력을 맡겼으므로, 왕권은 절대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이와 같이 현실적으로나 이론적으로 강대해진 절대 군주의 정치는 전제 정치가 될 수밖에 없었다. 루이 14세의 말이라고 전해지는 ‘국가, 그것은 즉 나다.’ 라는 표현은, 국가와 왕권을 동일하게 생각하고 있던 절대 군주의 성격을 잘 나타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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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 14세
루이 14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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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군주는 통일 국가를 통치하기 위하여 관료와 군대가 필요하였고, 이에 따라 관료 제도와 상비군 제도가 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에 필요한 재정을 마련하기 위하여 조세 제도를 마련하고, 중상주의 정책을 실시하였다.

절대주의 국가는 근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기는 하였으나, 아직 완전한 국민 국가는 아니었다. 군주의 왕조적인 이해 관계가 앞서고, 중세적이고 봉건적인 요소가 아직도 많이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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