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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절대 왕정

종교 전쟁을 종식시킨 앙리 4세를 거쳐 17세기에 프랑스 절대 왕정은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루이 13세의 재상이었던 추기경 리셜리외는 철저한 현실 정치가로서 왕권의 강화와 국력 증대에 전력을 기울이고, 30년 전쟁 말기에 독일의 신교도편에 가담하여 영토를 확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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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셜리외
리셜리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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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자랭 또한 리셜리외의 정책을 계승하여, 어린 루이 14세를 도와 귀족의 반항을 분쇄하였다. 마자랭의 사후, 직접 정치를 맡게 된 루이 14세는 콜베르와 같은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국내 공업을 일으키고, 해외로 진출하는 등 중상주의 정책을 쓰는 한편, 강력한 군대를 양성함으로써 유럽 최강의 나라가 되었다. 또한, 그는 화려한 베르사이유 궁전을 짓고, 문화와 예술을 보호하여 프랑스의 고전 문화를 꽃피게 하였다. 그의 궁정 생활은 다른 군주의 모범이 되고, 프랑스 어는 유럽 사교계의 언어가 되었다. 이리하여, 루이 14세는 태양왕으로 불리게 되었으나, 후기에는 낭트 칙령을 폐지함으로써(1685) 대부분이 기술자나 상공업에 종사하던 위그노들이 망명을 가게 됨으로써 산업에 타격을 주었고, 왕조적인 야심으로 무모한 전쟁을 자주 일으켜 모처럼 콜베르가 축적한 국부를 소모시켰다.

30년 전쟁으로 막대한 피해를 입은 독일은 300여 개의 소국가와 자치 도시의 연합체에 지나지 않았고,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는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왕실이 누리는 명예로운 칭호에 불과하였다. 이러한 독일에서는 17세기 말부터 18세기에 걸쳐 프로이센이란 새로운 강국이 북쪽에 출현하게 되었다.

원래 브란덴부르크 선제후의 나라였던 프로이센은 17세기에 라인 강변에 영토를 얻고 동부 프로이센을 획득하여 강대해지기 시작하여, 프리드리히 대왕 때에는 유럽의 강대국이 되었다. 그는 즉위 초에 오스트리아 왕위 계승 전쟁과 7년 전쟁을 통하여 영토를 확장하고, 그의 능력과 프로이센 군대의 힘을 과시하였다. 7년 전쟁 후, 프리드리히 대왕은 산업과 문화의 발전에 힘을 기울이고, 계몽 사상의 영향을 받아 계몽 전제 군주로 자처하였다. 이러한 프로이센의 성장 과정은 군국주의의 전통을 낳게 하고, 근세 초에 농노제가 강화되고 이를 토대로 한 토지 귀족의 세력이 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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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드리히 대왕
프리드리히 대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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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센과 거의 때를 같이 하여 강대국으로 등장한 나라가 러시아였다. 15세기 말에 몽고족의 지배를 벗어난 러시아는 17세기 말 피오트르 대제 때에 유럽의 문물 제도를 받아들여 근대 국가의 모습을 갖추고, 유럽의 역사 무대에 등장하게 되었다. 피오트르 대제는 또한 스웨덴과 싸워〔북방 전쟁〕 발트 해 연 안 지대를 획득하고, 성 페트로그라드(지금의 레닌그라드)를 건설하였다. 18세기 후반에 짜아르(황제)의 지위에 오른 에카테리나 여제는 절대주의를 강화하는 한편 폴란드의 분할에 참가하고, 투르크와 싸워 흑해 연안에 영토를 얻었다. 이 무렵, 러시아에서는 농노제가 강화되었으며, 짜아르의 권력은 유럽의 어느 절대 군주보다도 강하고 전제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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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염을 깎는 피오트르 대제
수염을 깎는 피오트르 대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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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같이 18세기에 새로이 프로이센과 러시아가 강대국으로 등장하여 영국, 프랑스, 오스트리아와 더불어 유럽의 국제 정치를 좌우하는 5대 열강을 형성하게 되었다. 한편, 프로이센과 러시아의 대두로 큰 피해를 입은 것은 그들 사이에 끼어 있던 폴란드였다. 폴란드는 3차에 걸쳐 프로이센, 오스트리아 및 러시아에 의하여 완전히 분할되어 독립을 상실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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