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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의 대외 정복

명은 건국 후 쇄국주의를 표방하여 국민의 해외 활동을 엄금하고, 원대에 성행하였던 동서 교통도 단절시켰다. 그러나, 명과 교섭을 희망하는 주변 국가들은 조공 무역이라는 제한된 방법에 의하여 관계가 허락되어, 이른바 동 아시아의 전형적인 조공 관계가 성립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과 무역을 희망하는  국가 또는 상인들은 형식적으로 이 조공 관계를 준수하는 조건으로 거래가 가능하였고, 이와 같은 교섭 조건은 청의 중기까지 계속되었다.

북방에서는, 15세기에 이르자 명 건국 후 몽고 고원으로 쫓겨 갔던 몽고족이 다시 강성하여, 장생을 넘어서 명에 자주 침입하였다. 성조는 여러 번 북방을 혼란시키는 몽고족의 세력을 정복하였고, 또한 만주족도 회유하여 분열 정책으로 복속시켰다. 남쪽으로는 안남을 정복하여 통치하였으며, 정화로 하여금 대함대를 이끌고 동남 아시아, 인도양, 아프리카 동해안에 이르는 곳에 여러 차례의 대원정(1405~1433)을 하여 명의 위용을 해외에까지 떨쳤다. 이와 같은 성조의 대외 정복은 폐쇄적이고 중국 본위였던 홍무 연간의 대외 관계를 크게 수정시킴으로써 중국인의 해외 진출을 자극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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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의 아시아와 남해 원정의 항로
15세기의 아시아와 남해 원정의 항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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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16세기에는 명이 외적의 침략으로 시달리게 되었다. 안남에서는 대월국이 명의 지배에서 벗어나 독립을 유지하는 한편, 북쪽에서도 몽고족이 강성해져서 영종(정통제)이 포로로 잡혀 가기까지 하였다. 그러는 한편, 남동 해안에서는 왜구의 노략질이 심해졌다.

일본은 한 때 명과 조공 관계를 맺고 있었으나, 왜구의 침입으로 공적인 관계가 중단되고 있었다. 이와 같은 남북으로부터의 외적의 침략을 북로 남왜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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