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3차 교육과정
  • 고등학교 세계사(3차)
  • Ⅴ. 동양 사회의 변천
  • 2. 근대화 운동
  • (1) 중국의 근대화 운동
  • 군벌의 항쟁

군벌의 항쟁

중화민국이 성립되자, 청조는 앞서 무술 정변 때에 시 태후의 신임을 받았다가 한때 사직하고 있던 위안스카이를 불러들여서, 근대식 편제의 북양군의 실권을 맡겨서 사태의 수습을 일임하였다. 여기서, 위안스카이는 자기가 중화 민국 정부의 총통이 되는 조건으로 혁명 정부와 타협하여 청조를 멸망시킨 뒤, 중화 민국 임시 대총통에 취임하여 정부를 난징에서 뻬이징으로 옮겼다.

그러나, 위안스카이는 쑨원 등의 민주 정치의 작업을 방해하고, 무력으로 국민당을 압박하면서 독재 정치의 야심을 드러냈다. 또한, 1915년에는 국회와 임시 헌법을 무시하고 왕정을 부활하여 황제가 되고자 획책하였다.

이에, 국민당은 물론 전국적으로 반대 봉기가 일어났고, 위안스카이를 지지하고 있던 열강들도 왕정의 부활을 연기하도록 권고하는 등 직접 간접으로 반대가 많아 왕정을 실현하지 못하였다.

위안스카이가 죽자, 한때는 부총통 리위안훙이 대총통이 되어 사태를 수습했지만, 뻬이징의 정권은 여러 파벌로 갈라진 군벌의 정권 다툼이 10여 년 동안 계속되었다.

확대보기
위안스카이의 무덤
위안스카이의 무덤
팝업창 닫기

군벌은 지방에 할거한 군사적 지배 세력으로 태평 천국의 난을 진압하는 과정에서 총독, 순무 등이 군정, 민정, 재정의 권한을 장악하면서 발생하였다. 중화 민국이 성립되자, 이와 같은 군사적 세력이 각지에 분립하여 독자적인 정부를 가지게 되었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