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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만 투르크의 근대화

16세기 중기에 아시아, 아프리카, 유럽에 걸친 대제국을 형성하고 전성기를 맞았던 오스만 투르크는 국내의 여러 모순속에서 차차 쇠퇴하여 갔다. 1683년에는 두 번째의 비인 포위전에 실패한 것이 계기가 되어, 도리어 오스트리아를 비롯한 유럽 열강의 반격을 받아서 유럽의 영토를 잃고 발칸 반도로 후퇴하였으나, 얼마 뒤에는 이 발칸 반도마저 상실하였다.

18세기에 접어들면서 국력의 만회를 위한 시책이 강구되었다. 중앙 정부의 봉토 분배권을 강화하고, 유럽 선진국의 군사 제도를 도입하여 근대적인 군대 편성도 꾀하였다. 종교와 정치를 분리하여 국가 체제의 근대화를 시도하였으나, 보수 세력들의 강경한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19세기에 이르자, 열강들은 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을 기화로 약소 국가의 침략에 박차를 가하였다. 그리이스가 독립하고, 이집트에서는 독립을 위한 반란이 있었으며, 프랑스가 알제리를 점령하였고, 영국도 아든을 점령하였다.

마호메트 2세는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유럽의 근대 문명을 대담하게 수용하여 제국의 힘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국가 재정과 지방 행정을 개혁하고, 프로이센의 기술 원조로 근대적인 군사 제도를 조직하였다. 이와 같은 개혁에 반대한 반란이 일자, 새로 조직된 근대적인 군단을 동원하여 이를 진압하는 한편, 이를 계기로 종래의 봉건 제도를 폐지하고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를 확립하였다.

특히, 19세기 중기에는 ‘탄지마트’라는 행정상의 대개혁을 단행하여(1839) 중앙 집권을 강화하고, 유럽 문명을 수용하는 등 근대적 개혁을 단행하였으며, 헌법이 반포되고 사업, 행정, 교육에 걸친 대담한 개혁이 실시되었다. 그러나, 발칸의 여러 민족의 독립 운동이 격화되고, 러시아⋅투르크 전쟁이 발생하자 헌법이 정지되고 개혁은 좌절되었으며, 국력도 별다른 신장을 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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