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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후의 유럽

전후의 서 유럽에는 대전 전의 좁은 국민 국가의 테두리를 넘어서 자유로운 유럽 공동체를 형성하려는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 첫 출발은 1950년 프랑스 외상 쉬망에 의하여 제안된 석탄 및 철강의 공동 관리인이었다. 이 안은 프랑스, 서독, 이탈리아, 네덜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에서 논의된 끝에 1952년부터 실천에 옮겨졌다. 이러한 움직임은 다시 서 유럽을 경제적으로 통합하려는 기운을 낳게 하여, 쉬망 안에 참가한 6개국을 중심으로 유럽 경제 공동체가 탄생하였다(1957). 유럽 경제 공동체는 유럽을 경제적으로 통합시키는 데 성공하였을 뿐 아니라, 1973년에는 덴마아크, 에이레, 영국 등이 가입하여 유럽 공동체로 발전하여 정치적인 통합의 기운까지 엿보이게 되었으나, 각국의 이해 관계가 서로 맞서는 경우가 있어 그 앞날이 매우 주목된다.

영국에서는 종전과 더불어 처어칠이 물러 나고, 애틀리의 노동당이 정권을 잡아서 점진적인 사회주의 정책과 개혁으로 경제 부흥에 힘쓰게 되었다. 그 뒤 보수당의 처어칠이 다시 정권을 담당하였으나(1951), 노동당이 시작한 새로운 경제 정책을 크게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이와 같이 영국에서는 보수당과 노동당이 번갈아 가며 정권을 담당하면서 경제 발전을 꾀하였으나,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여러 번 경제적 어려움에 당면하였다.

대전 중 독일의 점령하에 놓였던 프랑스는 물질적인 면에서만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큰 타격을 받았다. 1944년 파리의 해방과 더불어 드골이 망명 정부를 이끌고 귀국하여 제4공화정이 수립되었으나, 1946년 그가 은퇴한 후로는 군소 정당의 난립으로 정국이 어지러웠다. 한편, 인도차이나와 알제리 등 해외 식민지에서의 반란은 쉽게 진압되지 않아 프랑스의 재정에 큰 부담이 되었다. 이러한 사태는 끝내 제4공화정을 붕괴시키고, 드골이 영도하는 제5공화정을 낳게 하였다(1958). 드골은 헌법의 개정으로 행정부의 권한을 강화하여 정국을 안정시키고, 경제 발전과 독자적인 외교 노선으로 ‘위대한 프랑스’의 재건에 노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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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골
드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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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승국인 영국과 프랑스가 전후에 많은 어려움을 겪은 데 반하여, 1949년 연방 공화국으로 새 출발을 하게 된 서독은 눈부신 발전을 계속하였다. 20년간에 걸친 기민당의 아데나워와 에르하르트의 집권하에서 서독은 ‘라인 강의 기적’으로 알려진 놀라운 경제적 발전을 이룩하여 서 유럽에서 가장 번영된 나라가 되었다. 1969년의 선거에서 사회 민주당이 정권을 담당하게 되었으나, 서독의 정치적 안정과 경제적 번영의 토대는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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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데나워
아데나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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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에서는 1946년 왕정이 폐지되고 다음해에 공화적 헌법이 제정되었다. 프랑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탈리아에서도 공산당의 세력이 강하였으나, 기민당을 중심으로 정국이 안정되고 경제적으로도 발전하였다. 그러나, 1960년대에 정치적 안정이 흔들리기 시작함으로써 경제면에서도 어려움이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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