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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문학과 예술의 새 경향

서민 문학의 대두

두 차례의 외침을 겪은 후인 17세기에는 애국 사상과 사회 비판을 담은 문학 작품이 많이 창작되었다.

애국적인 문학 작품으로는 3학사를 비롯한 척화파 인사들의 시조가 유명하며, 임진왜란에 종군한 경험을 가진 박인로의 선상탄,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들의 활약을 소설화한 임진록, 호란 이후 북벌 운동을 추진했던 임경업의 활동을 그린 임경업전 등이 널리 읽혔다.

사회 소설로는 허균의 홍길동전과 작자 미상의 전우치전, 그리고 김만중의 사씨남정기와 구운몽이 유명하다. 특히, 홍길동전과 전우치전은 사회 정의의 구현을 위해 분투하는 이야기를 엮은 것으로, 후세의 많은 사람들이 애독한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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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길동전
홍길동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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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적이고 사회 풍자적인 민담들을 모아 놓은 야담, 잡기류도 유행하였다. 차천로의 오산집, 유몽인의 어우야담을 비롯하여 많은 야담, 잡기류가 나오고, 17세기 중엽에는 그 이전까지의 야사, 야담류 59종을 모아 대동야승이라는 책이 엮어지기도 하였다.

한편, 선조 때에는 중국의 설화집을 모은 태평광기의 언해가 이루어져, 설화 문학의 발달을 더욱 촉진시켰다. 설화 문학은 서민들의 소박한 세계관과 인생관이 반영되었다는 점에서, 그 작가들의 문학 정신이 서민 속에 깊이 뿌리박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18세기에 이르러서는 문학 창작의 주체가 양반뿐만 아니라 중인, 서얼, 그리고 상민층으로까지 확대되고, 그 형식도 훨씬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소설에서는 박지원의 풍자 소설이 가장 주목된다. 열하일기에 실린 허생전과 호질, 그리고 방경각외전에 실린 양반전과 민옹전 등에서 그는 양반들의 위선적인 생활을 풍자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 냄으로써 자신의 실학 정신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는 비록 한문체이기는 하나 옛 틀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문체를 개발하여 문체의 혁신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 국문 소설도 더욱 많이 창작되어 장화홍련전, 콩쥐팥쥐전 등과 같은 권선 징악적인 가정 소설이 널리 애독되었다.

시조, 한시, 가사, 잡가 등의 분야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시조는 국민들의 소박한 생활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는 주제의 작품이 많아지고, 그 형식도 점차 사설 시조로 바뀌었다.

18세기의 서리 출신 시조 작가인 김천택과 김수장은 우리 나라 역대 시조와 가사를 모아 청구영언과 해동가요를 각각 편찬하였고, 고시언은 소대풍요를 편찬하여 문학사 정리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시 분야에서는 이덕무, 유득공, 박제가, 이서구와 박지원이 뛰어났다.

평민들 사이에서는 잡가가 애창되었다. 잡가는 그 내용이 매우 솔직하고 해학적이며 풍자적인데, 타령, 육자배기, 사랑가, 수심가 등이 이에 속한다.

19세기 이후로는 판소리와 가곡이 국문학의 중심을 이루었다. 판소리는 광대들이 청중을 상대로 소설의 줄거리를 가창(歌唱)과 연극으로 연출하여, 읽는 소설보다 훨씬 흥미를 돋우었는데,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토끼타령, 적벽가, 가루지기타령 등은 가장 인기 있는 판소리 사설이었다. 판소리 사설의 창작과 정리에 공이 큰 사람은 19세기 후반의 신재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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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향전
춘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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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인, 상민의 문학 창작이 활발해지면서 동인(同人)들이 모여 시사(詩社)를 조직하여 같이 즐기기도 하였다. 또, 정수동, 김병연(김 삿갓) 같은 풍자 시인이 나타나 19세기는 서민 문학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전대부터 내려오던 가면극도 19세기에 이르러 더욱 성행하였다. 춤과 노래와 사설이 합쳐진 가면극은 종합 예술의 성격을 띠면서 국민 대중 속에 깊은 뿌리를 내렸다.

서화의 새 경향

그림에 있어서도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 전반에 걸쳐 새로운 발전을 보이면서, 윤두서, 정선, 김두량, 심사정, 최북 등 거장이 나타나더니, 18세기 후반에 이르러 김홍도와 신윤복이 나와 민족 회화의 중흥기를 이룩하였다.

정선은 중국 산수를 모방하던 종전의 화풍을 배격하고, 바위산이 많은 우리 나라의 자연을 그려 내는 데 알맞은 새로운 산수화를 개척하였다. 이른바 진경 산수화(眞景山水畫)라 불리는 그의 여러 작품 중에서도 인왕산 그림과 금강산 그림은 대표작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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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전도
금강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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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김홍도는 처음에 신선도를 즐겨 그리다가, 뒤에는 산수화와 풍속화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다. 그의 산수화는 정선과 마찬가지로 진경을 묘사하는 데 주력하였으나, 정선과는 다른 예리한 붓줄로써 한국 산수화의 또 다른 정형을 세워 놓았다. 김홍도의 풍속화는 밭갈이, 추수, 집짓기, 대장간, 서당, 씨름, 풍악놀이 등 농촌 서민들이 서로 협동하면서 일하고 함께 즐기는 순박한 18세기 농촌의 생활상을 유감 없이 그려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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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름도
씨름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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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도와 쌍벽을 이루는 신윤복은 주로 도회지 양반의 풍류 생활과 부녀자의 풍습을 풍자적인 필치로 묘사하여, 대조를 이루었다. 그 기법에 있어서도, 김홍도가 간결하고 소탈한 필치인 데 비하여, 신윤복은 섬세하고 세련된 필치를 구사하였다. 또, 김홍도의 풍속화는 그 배경이 생략되었는데, 신윤복은 산수를 배경으로 풍속화를 그렸다. 김홍도와 비슷한 경향의 풍속화가로는 김득신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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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유도
선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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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18세기 말 이후로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아 새로운 화풍이 개발되었는데, 강세황과 김수철의 그림, 그리고 작자를 알 수 없는 투견도가 그러한 계통의 그림으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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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통골 입구도
영통골 입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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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에 들어서면서는 실학적인 화풍이 시들고, 그 대신 복고적인 화풍이 다시 풍미하였다. 그 중에서 신위, 김정희, 장승업 등은 이 시기를 대표하는 사람들이었다. 세한도로 대표되는 김정희의 산수화는, 진경과는 달리 높은 이념 세계를 표현한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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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한도
세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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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신위는 대〔竹〕 그림의 제일인자로 명성이 높았고, 장승업은 안견, 김홍도와 더불어 조선 3대 화가로 꼽히는 천재적 화가로서, 사실적이고 생동하는 필력으로 새, 꽃, 인물, 산수 등 각 부문에서 많은 걸작을 남겼다.

서예에 있어서는 김정희가 고금의 필법을 깊이 연구하여 추사체라는 독자적인 서체를 창안하여 일세를 풍미하였다.

그의 서체는 금석학 연구에 바탕을 두어, 고대의 금석문에서 서도의 원류를 찾아, 그것을 자기 개성에 맞게 발전시킨 것이었다.

김정희 서체의 영향을 받은 사람으로서는 전기, 오경석, 신헌 등이 유명하였다.

서예와 아울러 도장 예술도 발달하여, 다양한 인각(印刻)이 이루어졌다. 도장에는 자기의 이름, 호, 싯구(詩句) 등을 새기고, 그것을 책이나 글씨, 그림 등에 찍어서 풍아한 정취를 돋우었다.

공예와 건축

조선 후기에는 광주의 사옹원 분원(分院)에서 자기를 생산하게 하여, 분원 자기가 널리 사용되었다. 분원 자기는 백자가 중심을 이루었는데, 청화 백자도 많이 만들었다. 청화 백자는 흰 바탕에 푸른 색깔로 그림을 넣은 것으로, 청아한 한국적인 정취를 자아냈다. 청화 백자 외에 산화철과 산화구리를 이용하여 갈색 또는 붉은색 그림을 넣은 자기와, 여러 가지 장식을 한 백자를 만들어 그 종류와 기법이 다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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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화 백자
청화 백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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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성과 예술성의 조화를 특색으로 하는 조선 후기의 공예는 목공예, 죽공예, 화각 공예 등 여러 분야에서 더욱 세련된 멋과 실용적 다양성을 지니면서 발달하여, 가정의 생활 용구의 전 분야에 걸쳐서 미적 감각을 높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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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각장
화각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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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철제 은입사 공예와 백통에 구리를 입사한 백통 입사 공예도 발전하였고, 별전(別錢)이나 열쇠패와 관련된 금속 공예도 발달하여 우수한 작품이 만들어졌다. 별전은 화폐를 주조할 때에 만든 기념 화폐로, 여러 가지 사상과 신앙을 표현하는 글씨와 그림을 넣어 장식품으로 즐겨 썼다.

조선 후기 토목 건축 중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정조 때에 완성된 수원성이다. 정약용의 치밀한 기본 설계에 의해서 축조된 수원성은, 종래의 성곽과는 달리 중화기를 배치하여 적을 공격할 수도 있는 성곽으로서, 공학상으로도 견고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성곽 양식의 장점을 살려서 축조한 특색 있는 성곽 건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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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성
수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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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군에 의해 재건된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는 말기의 건축을 대표하는 걸작으로서, 웅장하면서도 사치스럽지 않고, 주위의 환경과 균형을 이루어 아름다움을 더해 주고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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