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강의 대립

조선을 둘러싼 열강의 침략 양상은 갑신정변 후에 더욱 복잡하게 전개되었다. 청⋅일 간의 침략적 대립이 더욱 격화되었고, 러시아와 영국까지 조선 문제에 가담하였다. 그 중에서도 러시아는 남하 정책을 계속 추진하고자 적극적으로 조선에 침투하려 하였으므로, 청⋅일의 세력이 다 같이 위협을 받게 되었다.

뻬이징 조약에 의거하여 연해주를 차지한 러시아는(1860), 두만강을 사이에 두고 우리 나라와 접경하게 되었다. 그 후,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톡에 군항을 개설하였고, 이를 기지로 하여 남진의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조선에 와 있던 러시아 공사 베베르(Wäber)는 외교 수완이 능란하여 조선 궁중과 정부에 친러 세력을 심어 러시아의 세력을 크게 하고, 묄렌도르프의 도움으로 조⋅러 밀약을 꾸미려 하였다. 또, 육로 통상 조약을 맺어 경흥을 그들의 무역지로 개방하게 하고, 두만강의 운항권도 얻었다. 그들이 이러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임오군란 후 청의 지나친 내정 간섭에 대하여 조선 정계 안에서 반청, 친러 경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편, 영국은 러시아의 남하에 대항하고자 동양 함대를 보내어 거문도를 점령하고, 포대를 쌓아 군항을 만들었다. 이것은 러시아의 남하를 막으려는 의도에서 취한 행위였으나, 이는 자신의 이익을 위하여 타국의 영토를 불법 점유한 제국주의의 횡포였다. 영국 함대는, 조선의 영토를 점령하지 않겠다는 러시아의 다짐을 받은 다음에야 거문도에서 철수하였다(1887).

일본의 경제적 침투

청⋅러⋅영 등 각국이 각축을 벌이는 동안, 임오군란과 갑신정변으로 조선에서의 정치적 세력이 약화된 일본은 경제적인 침략을 강화하였다.

강화도 조약 이후, 일본은 그들의 자본주의 경제 발전을 위하여 조선을 상품 시장 및 원료 공급지로 만드는 정책을 써 왔다. 개항 이후 임오군란까지 우리 나라에 가져온 일본의 상품은 88%가 유럽 제품이었는데, 그 대부분이 영국산 면제품이었다. 일본 상인들은 상하이, 오오사카 등지에서 영국 면제품을 싸게 사다가 비싸게 팔아 넘겨 막대한 이익을 보는 중계 무역을 하였다. 일본제 상품은 아직 보잘것 없는 수공업 제품으로, 자기, 성냥, 술 종류 등이었다. 그러나, 일본의 공업 발전이 진행되면서 상품이 점차 일본 제품으로 바뀌어 갔다.

일본의 공업 발전에는 조선의 식량과 자원이 절대 필요하였다.¹⁾ 당시 일본은 우리 나라 연해에서 침략적 어로 행위를 자행하였다. 어로 협정 체결 이후 일본은 우리 영해에서 마음대로 어로 활동을 하였으므로, 우리 나라 어민들이 받는 피해가 커져 갔다. 이에 제주도에서는 1891년, 일본 어민의 출어 금지를 요구하는 민란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그리하여, 조선에서 쌀, 금, 피혁, 콩, 생사 등의 원료품을 가져갔다. 그 중에서 미곡의 유출이 수출 총액의 30% 이상을 차지하였다. 일본은 조선에 대한 경제 침투를 강화하여 조선의 전 수입액의 50% 이상, 수출액의 90% 이상을 차지하면서 무역 활동의 독점적 위치를 굳혀 갔다.

일본의 경제적 침략으로 말미암아 피해를 가장 많이 입은 것은 농민이었다. 농민은 미곡을 싼 값으로 팔아서 값비싼 생활 필수품을 사야 하였다. 부산과 원산에는 일본인들의 큰 곡물 거래소가 생겼는데, 그들은 농민들의 어려움을 이용하여 입도 선매(立稻先賣) 또는 고리대 형식으로 곡물을 수매하여 이중으로 이익을 보았고, 그에 따라 조선의 농촌 경제는 갈수록 피폐해졌다.

이러한 일본의 경제 침투를 막기 위한 방법의 하나로서 취해진 것이 방곡령이었다. 그러나, 함경도와 황해도에서 시행된 방곡령은, 1개월 전에 상대편에 예고해야 한다는 조약을 어겼다는 절차상의 문제로 일본의 강압적 항의를 받아 성공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일본의 부당한 배상 요구를 들어 주어야 했다.

동학 교세의 확대

동학은 서학에 대항하는 의식을 가지고 성립된 종교로서, 서양과 일본에 대한 저항 의식과 함께 양반 사회의 전통적 권위를 부정하였다.

동학은 최제우가 사형당한 뒤 큰 타격을 받았다. 그러나, 제2대 교주 최시형이 은신하면서 교세 확장에 꾸준히 노력한 결과, 관료의 횡포와 일본 경제의 침투로 고난 속에서 허덕이는 가난한 농민과 몰락한 양반들 사이에 세력을 크게 뻗쳤으며, 그 교세는 삼남 지방으로 확대되었다.

동학의 교세가 확대되자, 많은 동학 교도들이 전라도 삼례역에 모여 교조에 대한 신원(伸寃)과 교도에 대한 탄압을 막고 자유롭게 동학을 믿을 수 있도록 하고자 집단적인 시위 운동을 벌였다. 그러나, 교조 신원의 뜻을 이루지 못하자, 다시 40여 명의 동학 교도가 서울 궁궐 앞에 엎드려 교조 신원을 상소하였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학 교도들은 다시 충청도 보은에 집결하여 탐관 오리의 숙청, 일본과 서양 세력의 배척을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동학 운동

보은 집회가 열린 지 약 10개월 뒤인 1894년 정월에 전라도 고부에서 동학 운동의 불씨가 터졌다.

고부 군수 조병갑의 횡포와 착취에 항거하여 일어난 고부 민란에서 발전한 동학 운동은, 안으로는 유교적 전통 사회를 부정하고 개혁 정치를 요구하였으며, 밖으로는 외국의 침략을 몰아 내야 한다는 근대 민족 운동의 양상을 띠었다.

초기에는 철종 때부터 자주 발생하던 지방 민란의 성격을 벗어나지 못한 것이었으나, 정부의 진압과 사후 대책이 농민의 입장을 무시하는 것이었으므로, 동학 교도들이 대규모로 호응하게 되어 수만의 농민과 동학군이 봉기하게 되었고, 그 세력은 고부, 태인, 부안, 정읍, 흥덕 등을 휩쓸었다.

이 동학 운동은 종래의 민란과 성격이 달랐다. 그들은 제폭 구민(除暴救民)과 보국 안민(輔國安民)의 기치를 들었을 뿐 아니라, 척왜 양이(斥倭攘夷)를 주장하고, 마침내 대대적인 민중 운동으로 확대되어 갔다.

동학의 교단 조직과 여기에 대거 참여한 농민의 저항 의식은 빈약한 무기로도 큰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동학 교도와 농민들은 황토현 전투에서 관군을 물리치고 북진을 계속하여 한때 전주성을 점령하였다.

그러나 이 무렵, 조선에 대한 간섭의 기회를 엿보고 있던 청⋅일 양국군이 각각 아산만과 인천 쪽으로 출동하여 국제적인 문제로까지 확대되자, 동학군은 외세의 간섭을 피하기 위하여 정부와 폐정 개혁에 타협을 하고 일단 해산하였다. 동학 교도들은 전라도 일대에 일종의 민정 기관인 집강소(執綱所)를 설치하여 지방 치안과 행정을 바로잡으려 하였고, 12개조로 된 정치 개혁의 요강을 발표하였다.

동학군은, 일본군이 궁궐에 침입하여 민씨 세력을 몰아 내고 청⋅일 전쟁을 도발하자, 민족의 위급을 구하고자 다시 일어나 구국 항쟁을 폈다. 이 때는 동학의 남⋅북접이 합세하여 북쪽으로 진군, 공주 공격전에서 일본군 및 관군과 혈전을 거듭하였다.

그러나, 동학군은 우세한 무기를 가지고 정규군의 작전을 벌인 일본군과 관군에게 패하여 큰 희생을 치르고 패퇴하였으며, 전봉준, 김개남, 손화중 등 지도자가 체포되고 동학군은 흩어지게 되었다.

일본군은 전라도와 충청도에서 동학군을 수색하여 무자비하게 학살하였다. 그런 중에도 동학군의 항일 구국 투쟁은 삼남 일대에서 경기, 황해, 강원, 평안도에까지 번져 끈질긴 항쟁을 벌였다. 그러나, 마침내는 모두 진압되어 동학 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동학 운동은 비록 실패하였으나, 그 끼친 영향은 매우 컸다. 안으로는 갑오경장이 이루어지는 계기가 되어,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전통 사회가 붕괴되면서 새로운 근대 사회로 전진하는 전기를 이루었으며, 밖으로는 청⋅일 전쟁을 유발하여 마침내 청의 세력이 조선에서 후퇴하게 되었고, 일본의 조선 침략에 대한 발판을 굳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