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5차 교육과정
  • 고등학교 국사 5차(상)
  • Ⅰ. 선사 문화와 국가의 형성
  • 1. 선사 문화의 전개
  • (2) 구석기 문화

(2) 구석기 문화

구석기 시대

구석기 시대는 석기를 다듬은 정도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의 세 시기로 나누고 있다.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함북 웅기 굴포리,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과 덕천 승리산 동굴, 충남 공주 석장리, 충북 청원 두루봉 동굴, 경기도 연천 전곡리,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 등이 있다.1) 그 밖에 단양 금굴, 제원 창내, 요령성 금우산(金牛山) 동굴, 길림성 석문산촌(石門山村) 동굴 등지에서 포유동물의 화석과 여러 가지의 구석기가 출토되었다. 특히, 단양 금굴 유적은 약 70만 년 전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러한 유적에서 사람과 포유동물의 뼈2) 구석기인의 연구에는 동굴 유적에서 출토된 인골의 조각이나 뼈 화석이 중요한 자료가 된다. 그 중에서 덕천 승리산 동굴에서 출토된 어금니 2개와 단양 상시 동굴에서 발견된 머리뼈 등은 네안데르탈인(슬기 사람)의 특징을 보여 준다.나 화석, 석기류 등이 출토되어, 구석기 시대의 자연 환경과 생활상이 밝혀지게 되었다.

확대보기
우리 나라 중요 유적 지도
우리 나라 중요 유적 지도
팝업창 닫기

구석기 유적에서 나오는 동물의 뼈는, 털코끼리, 큰뿔사슴, 코뿔소 등의 큰 짐승으로부터 쥐, 토끼 등의 작은 짐승에 이르기까지 매우 다양하다. 이러한 동물 중에는 추운 곳에 사는 북방계와 더운 곳에 사는 남방계의 동물, 또 이제는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 버린 동물들도 섞여 있어서 구석기 시대의 자연 환경을 엿볼 수 있게 한다.

구석기 시대의 생활

구석기인들은 뗀석기를 이용하여 동물을 사냥하거나 나무 열매와 뿌리를 채집하여 식생활을 하였다. 그 후, 돌을 떼어 내고 다듬는 기술이 발달하게 됨에 따라 예리한 날을 세운 긁개, 밀개, 자르개, 찌르개 등의 소형 석기3) 뗀석기로는 먼저 냇돌이나 돌멩이를 내리쳐 깨거나 한끝을 쳐서 떼어 낸 찍개류, 또는 손에 쥐기 좋도록 약간 다듬은 주먹도끼가 만들어졌다.와, 동물의 뼈나 뿔을 이용하여 만든 골각기를 만들어 썼다. 이 중 주먹도끼, 찍개, 찌르개 등은 사냥 도구이고, 긁개, 밀개 등은 조리 도구이다.

확대보기
주먹도끼(경기도 연천 전곡리 출토)
주먹도끼(경기도 연천 전곡리 출토)
팝업창 닫기

구석기인들은 동굴에서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구석기 시대 후기의 집자리에는 기둥자리, 담자리 및 불 땐 자리가 남아 있다. 규모는 대략 3, 4명 내지 10명이 살았을 정도의 크기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가족 단위의 무리를 이루어 떠돌아다니는 무리 생활을 하였다. 무리 중에서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으나, 권력을 가지고 지배하는 것은 아니었고,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공동체적 생활을 영위하였다.

또, 구석기 시대에는 석회암이나 동물의 뼈, 뿔 등을 이용한 조각품 등이 만들어졌다. 공주 석장리에서 개 모양의 석상이나 고래, 멧돼지, 새 등을 새긴 조각과 그림이 발견되는데, 이를 통해 소박하나마 구석기인들의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예술품은 사냥을 주로 했던 구석기인들이 사냥의 대상이 되는 동물의 번성을 비는 주술적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보인다.

빙하기가 지나고 다시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자연 환경에 대응하는 생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였다.4) 이 시기는 구석기 문화에 이어지면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로서, 중석기 시대라고도 한다. 우리 나라에서는 최근에 통영의 상노대도 조개더미와 거창 임불리 유적 등에서 중석기 시대의 것일 가능성이 있는 유물들이 출토되고 있다. 그들은 이제 없어진 순록 대신에 토끼, 여우, 새 등 작고 빠른 짐승을 잡기 위해 활을 고안해 냈다. 이 시기에 주로 쓰인 석기는 잔석기로서, 여러 개의 석기를 나무나 뼈에 꽂아서 이음 도구를 만들어 톱이나 낫처럼 이용하였다.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