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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Ⅲ. 중세 사회의 발전
  • 2. 중세의 정치와 그 변천
  • (1) 정치 구조의 정비

(1) 정치 구조의 정비

국가 기반의 확립

태조 왕건이 호족 세력을 아우르면서 고려를 건국하고, 이어서 후삼국을 통일하였으나, 호족들은 여전히 독자적인 세력 기반을 가지고 왕권을 견제하고 있었다. 태조의 정략 결혼은 오히려 호족들끼리의 세력 다툼을 유발하였다. 그리하여 태조에 이어 혜종이 즉위하자,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호족들 사이의 암투가 현실로 나타났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왕규는 혜종의 암살을 음모하다가 처형당하고, 혜종도 그와 같은 싸움에 휘말려 희생되고 말았다. 호족 세력에 억눌림을 당하던 왕권은 광종 때에 이르러 비로소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되었다.

광종은, 그 자신의 안전을 도모하고 왕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외척과 호족 세력을 배제해야만 했다. 그리하여 노비 안검법을 단행하여 태조 이래의 훈신들을 견제하고, 과거 제도를 실시하여 학문 성적에 따라 신진 관리를 채용하는 등 새로운 정치 질서를 수립하여 갔다. 그 밖에, 새로 설정된 관료 체계의 안정을 위해 백관의 공복 제도를 제정하였고, 왕실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스스로 황제라 칭하고 연호를 사용하였다. 광종의 이러한 과단성 있는 정치는, 호족 세력을 도태시키고 신진 관료 계층을 양성함으로써 신구 세력의 교체를 이루어 놓았으며, 왕권의 안정과 국가 기반의 확립에 있어서 새로운 기틀을 마련하였다.

유교 정치 사상의 채택

고려 초기의 사회는 국가적으로 새로운 질서를 수립하기 위하여 많은 진통을 겪은 시기였다. 광종의 과단성 있는 개혁도 완전한 것은 못 되어, 광종 이후에 다시금 정치적인 혼란을 야기시켰다. 이윽고 성종 때에 이르러서는 그 때까지의 혼란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하여 새로운 정치 질서가 요구되었다.

성종 때에 새로운 정치 질서, 사회 질서의 수립에 주도적 역할을 담당한 것은 신라 6두품 계열의 유학자들이었다. 특히, 최승로는 유교 정치 사상에 입각하여 정치 질서, 사회 질서를 바로잡기 위한 개혁안으로 시무 28조를 왕에게 올렸는데, 그 대부분이 채택, 시행되었다. 그 중에서도 왕권의 전제화가 규제되고, 행정 기능이 강화된 것은 주목되는 현상이었다. 그리하여 성종 때에는 중앙 및 지방 관제를 비롯한 국가의 제도와 기구가 정비되어 중앙 집권 체제가 확립되었다. 이로써 문벌 귀족 사회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고, 그 뒤부터 고려의 정치는 신라 시대와는 크게 달라져, 보다 합리적인 유교 정치 이념을 내세우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게 되었다.

통치 조직의 정비

고려는 후삼국을 통일한 후 태봉과 신라의 관제를 병용하고, 또한 당의 관제도 일부 받아들였다. 그 후, 성종 때에 이르러 유교 정치 사상이 보급되고, 관제가 크게 정비되어 중앙 집권적인 통치 체제가 확립되었다.

중앙의 정치 기구로는 내사 문하성(후에 중서 문하성으로 고침.)과 상서성이 있었는데, 상서성 밑에는 이, 병, 호, 형, 예, 공의 6부를 두어 실제 행정을 분담시켰다. 그 밖에, 왕명의 출납과 군사 기밀을 맡은 중추원, 풍기 단속과 감찰을 맡은 어사대, 화폐와 곡식의 출납 및 회계를 맡아 보는 삼사(三司) 등의 관청을 두었다. 한편, 국가의 최고 회의 기관으로는 중서 문하성 및 중추원의 고관으로 구성되는 도병마사1) 성종 때 양 계의 병마사를 통솔하기 위해 처음 실시되었고, 현종 때 하나의 기구로 완성되었다. 무신 정변 이후에는 재추(宰樞) 전원이 구성원이 되고, 관장 사항도 군사 문제뿐 아니라 국정 전반에 미치게 되었다. 원 간섭하에서 도평의사사로 개편되었다.가 있어 국방 문제 등 국가의 중요 정책을 협의하였다. 그리고 관리의 임면이나 법제의 개폐가 있을 때에는 언관이 서경(署經)하고 간쟁하는 제도가 있었는데, 이는 왕권을 견제하기 위한 제도였다.

지방 행정은 성종 때 12목을 두었으나, 현종 때에 4도호부(후에 5도호부) 8목으로 개편되어 지방 행정의 중심이 되었다. 그 후, 지방 행정을 5도와 양 계로 크게 나누었는데, 동계와 북계의 양 계는 북방의 외침을 막기 위한 군사 행정 구역으로서, 양 계에는 병마사를 두었다. 그리고 도에는 안찰사를 두고, 그 밑에 주, 군, 현을 설치하였는데, 주와 군에는 지사, 현에는 현령을 두어 다스리게 하였다. 그리고 현 밑에는 촌이 있었다. 현까지는 중앙에서 지방관을 파견하였으나, 지방관이 파견되지 않은 현이 더 많았다. 그래서 지방관이 파견된 현을 주현(主縣)으로 하고, 그 밑에 몇 개의 현이 속해서 주현의 지방관이 이를 관할하였는데, 실제 행정은 향리가 담당하였다. 이 밖에, 양 계의 군사적 요충지에는 진을 설치하였으며, 천민이 집단적으로 거주하는 향, 소, 부곡과 같은 특별 행정 구역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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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 양 계
5도 양 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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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고려의 군사 조직은 정치성이 강한 중앙군과 국방적인 성격이 강한 주현군의 2원 조직을 이루고 있었다. 즉, 중앙에 왕의 친위군인 응양군, 용호군의 2군과, 수도 경비의 임무를 가지는 6위라는 여섯 부대를 두고, 상장군, 대장군 등의 무관을 두어 통솔하게 하였다. 그리고 각 고을에는 주현군이라는 지방군을 두어 향토 방위를 담당하게 하였다. 특히, 양 계에 배치된 주진군은 국방의 주역을 담당한 상비군이었다. 상장군, 대장군 등은 합좌 기관인 중방(重房)에서 군사 문제를 의논하였는데, 무신 정변 이후 권력의 중추 기구가 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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