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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사회 구조와 지배 세력

(1) 사회 구조와 지배 세력

사회 구조의 개편

고려는 가문과 문벌을 중시하는 귀족 계층이 왕실과 더불어 정치, 경제, 사회 등의 분야에서 지배층으로서의 특권을 누린 귀족 사회였다.

귀족 사회를 이끈 중심 세력인 문벌 귀족에는 세 가지의 유형이 있었다. 첫째, 호족 세력이 중앙 집권화 정책에 의해 중앙 관리로 진출한 경우이고, 둘째, 개국 공신 계열이 정치를 주도하면서 주요 세력을 이룬 경우이며, 셋째, 신라 6두품 계열의 지식인들이 과거를 통해 정치 세력에 편입된 경우이다. 이에, 고려 사회에서는 종래의 진골 중심 체제에서 벗어나, 지방 호족이나 유교적 지식인들이 새로운 지배층으로 등장하게 되어 전시대보다 개방적인 사회로 발전하게 되었다.

고려는 신분제 사회로서 가문에 따른 신분이 중요시되어, 이것이 사회 계층을 구분하는 기본 요소가 되었다. 고려 시대의 사회 신분은 귀족과 중간 계층, 그리고 양인과 천민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 신분은 시대와 정치 상황의 변동에 따라 계층 간의 이동이 가능하였다.

고려 시대의 귀족은 모든 문무 관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고, 그들 관리 중에서도 문벌이 좋으며, 고위 관직에 오른 일부 특권층만을 가리키는 것이다.

중간 계층으로는 귀족층에 편입되지 못한 하급 관리, 중앙 관청의 서리, 궁중 관리인 남반, 지방 행정의 실무를 맡았던 향리, 그리고 하급 장교들이 이에 속하였다.

양인은 일반 농민과 상공업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들이 포함되는데, 상인과 수공업자는 농민보다 천시되었다. 이들 양인층이 국민의 대부분을 이루었는데, 그 중에서도 농민이 주류를 이루었다.

사회의 최하층인 천민에는 노비와 향⋅소⋅부곡민 등이 있었다. 특수 행정 구역인 향, 소, 부곡에는 천민이 거주하였는데, 향, 부곡의 주민은 농업에, 소의 주민은 수공업에 종사하였다. 그 밖에, 화척, 진척, 재인 등도 최하의 천민층을 이루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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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신분 구조
고려 시대의 신분 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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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비는 국가 관청에 속한 공노비와 개인이나 사원에 속한 사노비로 나누어졌으며, 가장 천대를 받았다. 귀족 중심의 사회에서 토지와 노비는 경제적인 바탕이 되었으므로, 노비에 대한 관리는 엄격하였다. 따라서, 부모 중의 어느 한쪽이 노비이면 그 자녀도 노비가 되었으며, 노비 간의 소생은 어머니의 소유주에게 귀속되었다. 그러나 노비 중에서도 외거 노비는 농업에 종사하면서 독립적 가정을 이룰 수 있었다.1) 솔거 노비와는 달리, 독립된 가계를 유지하며 토지와 가옥, 노비 등을 소유할 수 있었다. 따라서, 이들은 거의 양인 농민과 동일한 처지에 있었다.

고려의 신분 제도는 엄격하여 조상의 신분이 그대로 자손들에게 세습되었지만, 이와 함께 사회 계층의 변동이 부단하게 일어나고 있었다. 고려 후기에는 천민 집단 구역인 향, 소, 부곡이 점차 일반 군현으로 승격되어 그 주민들이 양인화되어 갔고, 외거 노비 중에서 재산을 모아 양인으로 상승하는 자도 있었다.

문벌 귀족

고려의 귀족들은 주요 관직을 차지하여 권력을 장악하고, 과전, 공음전 등 막대한 토지를 소유하여 경제력을 확보하였다. 그들은 이러한 신분 사회를 유지하기 위하여 서로 중첩된 혼인 관계를 맺었다.

우선, 귀족들은 최고의 문벌인 왕실과의 혼인 관계를 열망하였는데, 이것은 왕실의 외척이 되는 것이 가문의 명예일 뿐만 아니라, 권력에 접근하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었다.

고려의 대표적인 문벌 귀족 가문은 경원 이씨였다. 경원 이씨는 문종부터 인종 때까지 왕실의 외척이 되어 80여 년 간 정권을 독점하였다. 이 밖에도 해주 최씨, 경주 김씨, 파평 윤씨 등이 대표적인 문벌 귀족들이었다.

문벌 귀족의 자제들은 과거에 급제하거나 음서(蔭敍)에 의해 관직에 나아가고, 가문을 배경으로 요직으로 승진하여 정치의 주도 세력이 되었다. 귀족의 자제에게 특혜를 준 음서 제도는 공음전과 함께 문벌 귀족 세력을 강화시키는 구실을 하였다.

한편, 지방 향리의 자제들이 과거를 통해 신진 관료로 진출하여 보수적인 문벌 귀족에 대립하기도 하였지만, 그들도 몇 대가 지난 다음에는 귀족 가문이 되었다. 폐쇄적인 귀족 사회의 내부에서 나타난 이러한 변화는 새로운 사회로의 발전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신 정변으로 문신 중심의 문벌 귀족이 몰락하고 무신이 집권층이 되었는데, 무신 정권이 무너진 후에는 권문 세족이 새로운 지배 세력으로 등장하였다.

권문 세족

권문 세족은 고관 요직을 장악하고 거대한 농장을 소유했던 고려 후기의 집권 세력이었다. 그들은 과거보다 주로 음서에 힘입어, 관인으로서의 신분을 세습시켜 나갈 수 있었다. 또, 그들은 가문을 기초로 삼아 종적인 가족 관계와 횡적인 혼인 관계를 통하여 세력 범위를 넓혀 나갔다. 이러한 권문 세족들 중에는 고려 전기로부터 그 세력을 이어 내려오거나, 무신 정권 시대에 대두한 가문도 있기는 하였으나, 주로 원의 세력을 배경으로 하여 등장한 경우가 많았다.

권문 세족들은 국정의 최고 합의 기관인 도평의사사를 독점하여 정권을 장악했을 뿐만 아니라, 방대한 농장과 많은 노비를 소유하여 경제적인 부를 축적하고 있었다.

농장의 소유주인 권문 세족들은 개경에 살고 있는 부재 지주로서, 전국 각처에 소유지를 가지고 있었다. 농장은 주인이 보낸 가신이나 노비에 의해 관리되었고, 농장의 경작은 전호나 노비가 담당하였다. 토지 겸병이 성행함에 따라, 일정한 토지를 경작하는 전호가 몇 명의 소유주에게 조를 물어야 하는 현상도 일어나, 전호들은 차라리 노비가 되어 농장주에게 보호받기를 원하는 경우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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