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정책

삼국 시대 이래로 불교는 현세 구복적이며 호국적인 성격을 띠고 있었다. 즉, 국가를 비보하고 국리 민복을 가져다 주는 신앙으로서 옹호되었다. 이리하여 불교는 고려 초부터 국가의 보호를 받으면서 크게 발달하였다.

고려 태조는 훈요 10조에서, 사원을 세워 불교를 숭상할 것과 연등회와 팔관회의 개최를 당부하여 불교 국가로의 방향을 제시하였다.

광종 때에는 승과 제도를 채용하여 교종선과 선종선을 두고, 급제자에게는 법계를 주어 권위를 높였다. 또, 국사와 왕사 제도를 두어 왕실의 고문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으며, 귀법사를 창건하여 화엄종의 본찰로 삼으면서 분열된 종파를 수습하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이 무렵, 의통과 제관은 오월에 건너가 중국의 천태종을 부흥시키는 데 큰 공을 세웠다. 즉, 의통은 중국 천태종의 13대 교조가 되었고, 제관은 천태종의 기본 교리를 정리한 천태사교의라는 명저를 저술하였다.

한편, 성종 때에는 최승로 등의 유학자가 등용되어 유교 정치 사상이 고무되면서, 연등회와 팔관회 등이 폐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현종 이후에는 불교가 국가의 보호를 받아 계속 융성하였으며, 현화사와 흥왕사 등의 사찰이 건립되었다.

천태종

문벌 귀족 체제의 극성기인 11세기 전후에는 불교 의식에 치중하는 귀족들의 애호를 받은 법상종이 발달하였다. 문종의 넷째 아들인 대각국사 의천은 송에 유학하고 돌아온 후, 귀족들의 호화로운 불교 의식의 폐단을 개선하려고 하였다. 그는 새로 준공된 흥왕사의 주지가 되어, 이 절을 화엄종의 본찰로 삼아 교세를 크게 진작시켰다.

또, 의천은 화엄종의 입장에서 선종을 통합하기 위해 해동 천태종을 창시하였다. 그는 특히 이론과 실천의 양면을 강조하는 교관겸수를 제창하고, 원효의 화쟁 사상을 중시하였다. 이후, 의천의 문하에 많은 승려들이 모여들어 천태종의 융성기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러나 의천의 교종, 선종의 통합은 불완전한 것이어서, 그의 사후에 선종은 다시 독립하게 되었다.

조계종

무신 정변 이후, 불교계에는 선종의 부흥과 신앙 결사 운동의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이는, 지금까지 왕실 및 문신 귀족의 비호 아래 성장해 온 교종 중심의 불교계가 최씨 정권의 탄압을 받았고, 그 대신에 선종 계통의 불교가 후원을 받았기 때문이었다. 이리하여 선종을 중심으로 교종을 통합하려는 조계종이 융성하게 되었다.

조계종의 지눌은 당시 불교계의 타락을 비판하면서 불교 수행의 중심을 이루는 두 요소인 정⋅혜를 함께 닦자는 실천 운동을 전개하였다. 그런데 이 정혜쌍수(定慧雙修)의 바탕이 되는 이론이 돈오점수(頓悟漸修)였다. 돈오는 인간의 마음이 곧 부처의 마음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며, 점수는 깨달은 뒤에도 꾸준히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지눌은 화엄 사상을 도입하여 화엄과 선의 근본이 다르지 않다고 하고, 이러한 기초 위에 송의 선(禪) 사상을 받아들였다. 이로써 지눌의 사상은 교종과 선종의 조화를 이루어, 선⋅교 일치의 완성된 철학 체계를 이룩하였다.

조계종은 지눌 이후 뛰어난 계승자들에 의해 계속 발전하였는데, 유⋅불 사상의 일치설을 내세워 유교와 불교의 타협을 기도한 혜심이 그 대표적 인물이다. 이처럼, 조계종은 왕실 및 문신 귀족과 결탁한 세속적인 불교를 배척하는 한편, 교리상으로도 커다란 발전을 이룩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성격을 지닌 조계종은, 무신 정권의 정책적인 후원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세계를 개척해 나갔을 뿐 아니라, 좌선 등 심성의 도야를 강조하여 불교에서 성리학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역할도 수행하였다. 그러나 원의 간섭기에 접어들면서 불교계의 혁신 운동은 단절되었으며, 이후의 불교는 다시 세속화되어 폐단이 많았다. 당시의 불교 사원은 권문 세족의 후원을 받으면서 막대한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였고, 고리 대업과 상업에도 손을 대어 부패가 심하였다. 이에, 고려 말의 불교는 성리학을 수용한 신진 사대부들로부터 비판을 받게 되었다.

대장경의 조판

고려에서는 국가적인 사업으로 불경 전집인 대장경의 간행을 추진하였다. 대장경이란, 경, 율, 논 등 삼장(三藏)의 불교 경전을 총칭하는 말인데, 대장경의 조판이 활발했던 것은 고려의 불교가 호국 불교, 현세 이익 불교로서의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

초조 대장경은 현종 때 부처님의 힘을 빌려 거란을 퇴치하려는 염원에서 조판이 시작되었으며, 여기에는 불교의 교리를 정리하려는 뜻도 내포되었다. 이 대장경은 대구 부인사에 판본이 소장되어 있던 중, 몽고의 침입으로 소실되었다. 현재 그 인본의 일부가 일본에 비장되어 있으며, 우리 나라에서도 그 일부가 수습되어 귀중한 문화재가 되고 있다.

초조 대장경이 완간된 얼마 후에 의천은 흥왕사에 교장도감을 설치하고, 국내의 것은 물론 송, 요, 일본 등에서 모아 온 대장경의 주석서인 장⋅소 들을 간행하였는데, 이것이 이른바 속장경이다. 그는 먼저 불서 목록인 신편제종교장총록을 작성하고, 10년에 걸쳐 4760여 권을 간행하였다. 그러나 이 속장경도 몽고군의 침입으로 인하여 소실되었으며, 그 인본의 일부가 일본에 보관되어 있고, 우리 나라에는 조선 초에 중수, 간행된 불서 목록이 송광사에 전해 오고 있다.

몽고의 침입 때 조판된 재조 대장경은 강화의 피난처에서 만든 것으로, 현재 합천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팔만 대장경이다. 팔만 대장경은 내용의 정확함과 자체의 아름다움, 목판 제작의 정교함이 동양의 대장경 중에서 가장 으뜸 가는 것이다. 전란기임에도 불구하고, 세계 불교 사상 유례가 드문 우수한 대장경을 조판할 수 있었던 것은, 고려 불교의 높은 수준과 문화 의식이 바탕이 되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