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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Ⅲ. 민족의 독립 운동
  • 3. 경제⋅사회적 저항 운동
  • (3) 사회 운동의 전개

(3) 사회 운동의 전개

신간회와 근우회

1920년대 초에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되어, 민족 운동의 새로운 국면이 전개되었다. 일제의 탄압을 받고 있던 우리 민족은, 사회주의 사상을 쉽게 수용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었다. 주로 청년 지식층 간에 사회주의 사상을 받아들인 사람이 많았는데, 이들에 의하여 농민 운동, 노동 운동, 청년 운동 등 사회 운동이 매우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그러나 사상적인 이념과 갈등은 민족 독립 운동 그 자체에 커다란 차질을 초래하였다. 그리하여 이와 같은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이 모색되었으며, 그 결과 민족 유일당 운동이 일어났다.

민족 유일당 운동은 민족주의 진영과 사회주의 진영이 이념과 방략을 초월하여 통합함으로써, 단일화된 민족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하려는 것이었다. 이리하여 신간회가 결성되었다.

신간회는 이상재 등 지식인 30여 명의 발기로 서울에서 발족하였으며(1927), 곧이어 각지에 지회를 설치함으로써 전국적인 규모로 발전하였다. 신간회는 민족의 단결과 정치적, 경제적 각성을 촉구하고, 기회주의자를 배격하는 것을 기본 강령으로 내세우고, 광주 학생 항일 운동에 조사단을 파견하는 등 민족 운동을 전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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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창립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
신간회 창립을 보도한 당시의 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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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의 출범과 더불어 탄생한 것이 근우회였다. 근우회는 김활란 등이 중심이 되어 여성계의 민족 유일당으로 조직되었고, 여성 노동자의 이익 옹호와 신생활 개선을 행동 강령으로 하였다. 그러나 이 두 단체는, 일제의 교묘한 탄압과 내부의 이념 대립으로 1930년대 초에 해체되고 말았다.

청소년 운동

1920년대 초에 전국의 청년 운동 단체는 100여 개가 넘었으며, 이들 청년 운동 단체들은 표면적으로는 청년의 품성 도야, 지식 계발, 체육 장려, 단체 훈련 강화 등을 내세웠고, 풍속의 개량과 미신 타파 등을 통하여 사회 개선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이들 단체들은, 이와 같은 표면적인 방향보다 실제로는 민족의 생활과 역량을 향상시킴으로써 자주 독립의 기초를 이룩하려 하였다.

따라서, 청년 단체들은 강연회, 토론회 등을 개최하고, 학교, 강습소, 야학 등을 설치, 운영하여 지식의 향상을 꾀하였으며, 운동회, 조기회 등을 통하여 심신의 단련을 도모하였다. 또, 단연회, 금주회, 저축 조합 등을 결성하여 사회 교화와 생활 개선을 꾀하였다.

그러나 1920년대 초에 사회주의 사상이 유입된 이후, 청년 단체들은 민족주의 계열과 사회주의 계열로 나뉘었다. 이와 같은 청년 운동의 분열을 수습하기 위하여 조직된 것이 조선 청년 총동맹이었다(1924).

청년 운동의 발흥에 영향을 받아 소년 운동도 활발히 전개되었다. 소년 운동은 천도교 청년회가 소년부를 설치함으로써 본격화되었으며, 그 후 천도교 소년회로 독립하여 어린이날을 제정하고, 기념 행사를 거행함으로써 소년 운동의 물결은 전국적으로 확산되었다.

그 후, 소년 운동의 전국적 조직체로서 조선 소년 연합회가 결성되어, 체계적인 소년 운동이 전개되었다. 특히, 방정환과 조철호 등은 소년 운동을 통해 어린이들에게 용기와 애국심을 북돋워 주었다. 그러나 지도자들 사이의 사상과 이념의 대립으로 소년 운동도 분열되었다. 더구나, 중⋅일 전쟁 발발 후, 일제가 한국의 청소년 운동을 일체 금지시킴으로써 청소년 운동은 중단되고 말았다.

문맹 퇴치 운동

우리 민족은 일제의 가혹한 식민지 차별 교육 정책으로 인하여 교육의 기회를 상실하였기 때문에 문맹자가 증가하였다. 문맹자의 증가는 민족의 역량을 약화 시키는 것이며, 바로 일제가 목표로 하였던 바 한국인의 우민화를 뜻하는 것이었다. 이에 우리 민족은, 3⋅1 운동을 계기로 문맹 퇴치가 급선무임을 자각하여, 이를 실천에 옮겨 갔다. 그리하여 1920년대에는 전국 각지에 야학이 설립되었다.

문맹 퇴치 운동에 앞장을 선 것은 조선 일보, 동아 일보 등 민족 언론이었다. 조선 일보는 민중 문화의 향상을 위한 문자 보급 운동을 시작하였다. 당시, 조선 일보와 귀향 학생들에 의하여 추진된 이 운동은, 농촌 계몽과 문맹 퇴치에 커다란 성과를 거두었다. 동아 일보는 브나로드 운동1) 브나로드(vnarod)라는 말은, 원래 러시아어로, ‘민중 속으로’라는 뜻이다. 동아 일보가 전개한 문맹 퇴치 운동은 민중의 생활 개선과 문화 생활을 계몽하려는 의도에서 그 어원을 활용하였던 것이다.을 전개하였는데, 이 운동은 2천만 국민 중 80%에 가까운 1600만 명이 문맹자라는 심각한 현실을 타개하기 위하여 이들에게 우리글을 가르치면서, 한편으로는 미신 타파, 구습 제거, 근검 절약 등 생활 개선을 꾀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언론 기관에 의한 농촌 계몽과 문맹 퇴치 운동도 일제의 탄압이 가중되면서 끝을 맺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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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나로드 운동의 보도(동아 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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