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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Ⅱ. 선사 문화와 국가의 형성
  • 1. 선사 문화의 전개
  • (2) 한국의 선사 문화

(2) 한국의 선사 문화

민족의 기원

어느 나라의 역사에 있어서나, 모든 종족은 인근의 종족과 교류를 하면서 문화를 발전시키고 민족을 형성해 왔다.

동아시아에서는 선사 시대에 여러 민족이 문화의 꽃을 피웠는데, 그 중에서도 우리 민족은 독특한 문화를 이루고 있었다. 인종상으로는 황인종에 속하고, 언어학상으로는 알타이 어계에 속하는 우리 민족은, 오래 전부터 하나의 민족 단위를 형성하고, 농경 생활을 바탕으로 하여 독자적인 문화를 이룩하였다.

우리 조상들은 대체로 요서, 만주,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 아시아에 넓게 분포되어 있었다. 우리 나라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구석기 시대부터이며,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를 거치는 과정에서 민족의 기틀이 이루어지게 되었다.

구석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

우리 나라에 구석기인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약 70만 년 전부터이다. 구석기 시대는 석기를 다듬는 수법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의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전기에는 한 개의 큰 석기를 가지고 여러 용도에 썼으나, 중기에는 큰 몸돌에서 떼어 낸 격지들을 가지고 잔손질을 하여 석기를 만들었으므로 크기는 작아지고 한 개의 석기가 하나의 쓰임새를 가지게 되었다. 후기에 와서는 쐐기 등을 대고 같은 형태의 여러 개의 돌날격지를 만드는 데까지 발달하였다.

우리 나라 전기 구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유적으로는 평남 상원 검은모루 동굴, 경기도 연천 전곡리 유적 등이 있으며, 중기 유적으로는 함북 웅기 굴포리, 강원도 양구 상무룡리 유적 등이 있다. 후기 유적 가운데에는 충남 공주 석장리, 충북 단양 수양개 유적 등이 유명하다. 이들 유적에서 석기들과 함께 사람과 동물의 뼈 화석, 동물 뼈로 만든 도구 등이 출토되어 구석기 시대의 생활상이 밝혀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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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유적지(경기 연천)
구석기 유적지(경기 연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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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 시대의 생활

구석기인들은 동물의 뼈나 뿔로 만든 뼈 도구와 뗀석기를 가지고 사냥과 채집을 하여 식생활을 하였다. 처음에는 찍개 등의 도구를 가지고 여러 용도에 썼으나, 차츰 뗀석기를 제작하는 기술이 발달함에 따라 용도가 뚜렷한 작은 석기들을 만들게 되었다. 이 중 주먹도끼, 찍개 등이 주로 사냥 도구라면 긁개, 밀개 등은 대표적인 조리 도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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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먹도끼(충북 단양 금굴)
주먹도끼(충북 단양 금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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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석기인들은 동굴에서 살거나 강가에 막집을 짓고 살았다. 구석기 시대 후기의 집자리에는 기둥자리, 담자리 및 불땐 자리가 남아 있다. 규모는 대략 3, 4명에서 10명이 살았을 정도의 크기이다.

구석기 시대에는 무리를 이루어 큰 사냥감을 찾아다니며 무리 생활을 하였다. 무리 가운데 경험이 많고 지혜로운 사람이 지도자가 되었으나, 권력을 가지지는 못하였으며 모든 사람이 평등한 공동체적 생활을 하였다.

또, 구석기 시대 후기에 오면서 석회암이나 동물의 뼈, 뿔 등을 이용한 조각품 등이 만들어졌다. 공주 석장리와 단양 수양개에서 고래와 물고기 등을 새긴 조각이 발견되었는데, 이를 통하여 구석기인들의 소박한 솜씨를 엿볼 수 있다. 이러한 예술품에는 구석기인들이 사냥감의 번성을 비는 주술적 의미가 깃들인 것으로 보인다.

구석기 시대 끝 무렵이 되면 빙하기가 지나고 다시 기후가 따뜻해지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자연 환경에 대응하는 생활 방법을 찾으려 노력하였다1) 이러한 생활 방식의 결과로 나타난 문화를 중석기 문화라고 한다. 이 시기는 구석기 시대에서 신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적인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북한에서는 웅기 부포리와 만달리 유적을 중석기 시대로 보고 있으며, 남한에서는 통영 상노대도 조개더미의 최하층이나 홍천 하화계리 유적 등을 중석기 시대의 유적으로 보고 있다.. 그들은 이제 큰 짐승 대신에 토끼, 여우, 새 등 작고 빠른 짐승을 잡기 위해 활 등을 사용하였다. 이 시기의 석기들은 더욱 작게 만들어진 잔석기로서, 한 개 내지 여러 개의 석기를 나무나 뼈에 꽂아 쓰는 이음 도구를 만들게 되었다. 이음 도구에는 톱이나 활, 창 등이 있었다. 한편, 따뜻한 기후로 식물들이 번성하게 되면서 이 시기 사람들은 식물의 채취와 물고기잡이를 많이 하게 되었다.

신석기 시대의 유물과 유적

우리 나라의 신석기 시대는 B.C. 6000년경부터 시작되었다. 이 때부터 사람들은 돌을 갈아서 여러 가지의 형태와 용도를 가진 간석기를 만들어 사용하였다. 그리하여 부러지거나 무디어진 도구도 다시 갈아 손쉽게 쓸 수 있게 되었으며, 단단한 돌이나 무른 석질의 돌을 모두 이용하게 되었다. 또, 진흙을 불에 구워서 만든 토기를 사용하여 음식물을 조리하거나 저장할 수 있게 됨에 따라 생활이 보다 나아지게 되었다. 이러한 간석기와 토기는 신석기 시대를 특징짓는 유물이다.

우리 나라 신석기 시대의 대표적인 토기는 빗살무늬 토기이다. 그러나 근래 이보다 앞서는 시기의 토기가 발견되고 있다. 이들은 무늬가 없거나 토기 몸체에 덧살을 덧붙인 것으로 각각 이른 민무늬 토기, 덧무늬 토기로 불린다. 이들 토기는 함북 웅기 서포항, 강원도 양양 오산리, 부산 동삼동 조개더미 등에서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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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기 시대의 토기
신석기 시대의 토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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빗살무늬 토기 유적은 전국 각지에 걸쳐 널리 분포되어 있다. 대표적인 유적은 황해도 봉산 지탑리, 서울 암사동, 경남 김해 수가리 유적 등이며, 모두 강가나 바닷가에 자리잡고 있다. 빗살무늬 토기는 도토리나 달걀 모양의 뾰족한 밑 또는 둥근 밑 모양을 하고 있으며 크기도 다양하다.

빗살무늬 토기의 사용은 농사를 지어 식량을 생산하고 저장하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것이다.

신석기 시대의 생활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 생활이 시작되었다. 봉산 지탑리와 평양의 남경 유적에서는 탄화된 좁쌀이 발견되어 잡곡류가 이미 신석기 시대에 경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에 이용된 주요 농기구로는 돌괭이, 돌삽, 돌보습, 돌낫 등이 있다. 그리고 현재 남아 있지는 않으나, 주변 중국이나 일본의 경우를 보면 나무로 만든 농기구가 사용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농경 기술이 발달하면서 사냥과 물고기잡이가 경제 생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식량의 큰 몫을 차지하였다. 사냥은 주로 활이나 창을 이용하여 사슴류와 멧돼지 등을 잡았고, 물고기잡이에는 여러 가지 크기의 그물과 작살, 돌이나 뼈로 만든 낚시 등을 이용하였다. 통나무배를 타고 먼 바다에 나가서 물고기나 바다 짐승을 잡기도 하였다. 또, 굴, 홍합 등 많은 조개류를 먹었는데, 때로는 깊은 곳에 사는 조개류를 따서 장식으로도 이용하였다.

농경 도구나 토기의 제작 이외에 원시적인 수공업 생산도 이루어졌다. 가락바퀴나 뼈바늘이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의복이나 그물을 만들어 썼음을 알 수 있다.

도구의 발달과 농경의 시작으로 주거 생활도 개선되어 갔다. 집자리는 대개 움집인데, 바닥은 원형이나 모가 둥근 방형이며, 중앙에 취사와 난방을 위한 화덕이 위치하고 있다. 햇빛을 많이 받는 남쪽으로 출입문을 내었으며, 화덕이나 출입문 옆에는 저장 구덩을 만들어 식량이나 도구를 저장하였다. 그 규모는 대개 4~5명 정도가 살기에 적당한 크기였다.

신석기 시대에는 부족 사회를 이루고 있었다. 부족은 혈연을 바탕으로 한 씨족을 기본 구성 단위로 하였다. 이들 씨족은 점차 다른 씨족과의 족외혼을 통하여 부족을 이루었다. 그러나 부족 사회 역시 아직은 지배, 피지배의 관계가 발생하지 않은 평등 사회였다.

농경과 정착 생활을 하게 되면서 인간은 자연의 섭리를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농사에 큰 영향을 끼치는 자연 현상이나 자연물에도 정령이 있다고 믿는 애니미즘이 생겨나게 되었다. 그 중에서 태양과 물에 대한 숭배가 으뜸이 되었다. 또, 사람이 죽어도 영혼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영혼 숭배와 조상 숭배가 나타났고, 인간과 영혼 또는 하늘을 연결시켜 주는 존재인 무당과 그 주술을 믿는 샤머니즘도 있었다. 그리고 자기 부족의 기원을 특정 동식물과 연결시켜 그것을 숭배하는 토테미즘이 있었다.

이 시대의 예술품으로는 주로 흙으로 빚어 구운 얼굴 모습이나 동물의 모양을 새긴 조각품, 조개 껍데기 가면, 조가비로 만든 치레걸이, 짐승의 뼈나 이빨로 만든 장신구 등이 있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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