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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 중세의 정치적 변천
  • (3) 무신 정권 시대

(3) 무신 정권 시대

무신 정변

동요를 거듭하던 문신 중심의 문벌 귀족 사회는 의종 때 일어난 무신 정변으로 인하여 무너지고 말았다. 무신 정변이 발생하게 된 원인으로는 다음의 세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숭문 천무의 정책에 따른 문⋅무반 차별 대우와 그로 인한 두 세력 간의 대립을 들 수 있다.

둘째, 군인들은 전투와 노역에 시달린데다가 군인전도 제대로 지급받지 못함으로써 생활고를 겪게 되어 불평과 불만이 쌓이고 있었다.

셋째, 의종이 정치를 제대로 하지 못한데다가 의종의 총애를 받던 문신들이 무신을 멸시하여 무신들의 반감이 커지게 되었다.

이와 같은 사정을 배경으로 하여 마침내 의종의 보현원 놀이를 틈타 무신들이 정변을 일으켰다(1170). 이 때, 정중부 등은 다수의 문신을 죽이고 의종을 폐하여 거제도로 귀양을 보낸 후 명종을 세웠다.

무신 정변으로 문신 중심의 정치 조직은 그 기능을 상실하고, 무신 중심의 독재 정치가 나타나게 되었다. 정치 경험이 없이 집권하게 된 무신들은 중방을 중심으로 무단적 정치를 실시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무신들은 주요 관직을 독점했을 뿐만 아니라 다투어 토지와 노비를 늘려 갔으며, 저마다 사병을 길러 권력 쟁탈전을 벌였다. 즉, 경대승이 집권자였던 정중부를 죽이고 정권을 차지하였다. 그리고 그가 경호 기관인 도방을 두고 권력을 휘두르다 병사하자, 그 뒤를 이어 천민 출신인 이의민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그도 얼마 안 가서 최충헌 형제에게 피살되는 등 혼란이 거듭되었다.

사회의 동요

무신 정변 이후 무신들이 정권을 독점하자, 명종 때에는 동북면 병마사 김보당이 의종의 복위를 꾀하고 난을 일으킨 데 이어, 서경 유수 조위총 등이 지방군을 이끌고 중앙의 무신 정권에 반대하여 난을 일으켰다.

한편, 무신들의 가렴 주구로 생활이 어렵게 된 농민과 천민들도 전국 각지에서 봉기하였다.

천민과 노비들은 신분 해방을 외치며 봉기하였는데, 공주 명학소에서 일어난 망이⋅망소이의 난, 전주 관노들의 난 등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운문의 김사미와 초전의 효심 등은 연합하여 그 세력이 한 때 경상도 전역에 확대되기도 하였다.

특히, 개경에서 집권자 최충헌의 사노였던 만적이 신분 해방을 외치며 개경의 노비들을 규합하여 궐기하려던 사건은 집권 무신 세력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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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의 동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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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정권 시대

최충헌은 정권을 잡자 강력한 전제 정치로 정권의 안정을 다짐으로써 무신 정권 초기의 혼란을 수습하였다. 그리하여 4대 60여 년 간의 최씨 정권이 유지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다.

최씨 정권의 최고 집정부의 구실을 한 기관은 교정도감이었다. 최충헌이 설치한 이후 역대 최씨 집권자들이 교정도감의 장관인 교정별감이 되어 권력을 장악하였다. 최충헌은 또 자신의 신변 경호를 위해 도방을 설치하였는데, 이는 삼별초와 함께 최씨 정권을 유지하는 군사적 기반이 되었다.

최충헌의 아들 최우는 독자적인 인사 행정 기구인 정방을 자택에 설치하여 문⋅무관의 인사권을 장악하기도 하였다. 또, 문인들의 숙위 기관인 서방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문사들을 참여시켜 고문 역할을 담당하게 하였다. 최씨 정권은 독자적인 지배 기구와 막대한 사병을 유지하기 위하여 진주 지방을 식읍으로 차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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