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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과학 기술과 예술의 발달

과학과 기술학

고려 시대의 과학과 기술학은 유학과 한문학에 비하여 비교적 소홀히 취급되었다. 그러나 국정 운영이나 현실 생활과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국자감에서도 율학, 서학, 산학 등의 이른바 잡학이 교육되었다. 또, 과거에서도 기술관 등용을 위한 잡과가 실시됨으로써 과학과 기술학이 발전할 수 있었는데, 여기에는 중류층이 많이 참여하였다.

고려 시대에는 천문학과 역법이 발달하였다. 그 이유는 농사를 위한 천체 운행과 기후 관측에 천문학과 역법이 필요하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천문 관측과 역법 계산을 맡아 행하던 관청으로 사천대(뒤의 서운관)가 설치되었다.

고려 시대에도 천재 지변을 하늘의 뜻으로 인식하였다. 따라서, 하늘의 뜻을 알아 내기 위해 천문 관측에 더욱 힘을 기울였기 때문에 정확한 역법을 계산하는 방법이 발달할 수 있었다. 역법의 경우 고려 초기에는 신라 때부터 쓰기 시작하였던 당의 선명력을 그대로 사용하였으나, 충선왕 때에는 원의 수시력을 채용하였고, 공민왕 때에는 명의 대통력을 받아들여 사용하였다.

기술학에서 가장 괄목할 만한 것은 인쇄술의 발달이었다. 건국 초기부터 개경과 서경에 도서관을 설치하고 많은 책들을 수집, 보관하였을 뿐만 아니라 새로이 책을 인쇄하기도 하였다. 그 결과, 대장경 간행에서 보듯이 목판 인쇄술은 전기부터 크게 발달하였다. 그러나 여러 가지 책을 소량으로 인쇄할 경우 목판보다는 활판 인쇄가 더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일찍부터 활판 인쇄술의 개발에 힘을 기울였다. 이에 중기 이후에는 금속 활자가 발명되어 활판 인쇄가 발전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고종 때에는 금속 활자로 상정고금예문을 인쇄하였는데(1234), 이는 서양에서 금속 활자가 사용된 것보다 200여 년이나 앞선 것이었다. 상정고금예문은 오늘날 전해지지 않지만, 그 대신 1377년에 간행된 직지심체요절이 프랑스 파리에서 발견되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금속 활자본으로 공인받고 있다. 금속 활자의 사용이 활발해지자, 공양왕 때에는 서적원이란 전문 인쇄 기관을 설치하여 주자와 인쇄를 맡아 보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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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지심체요절
직지심체요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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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도 상당한 수준으로 발달하였다. 국초부터 지방 학교에 의학 박사를 파견하였고, 중앙의 태의감에서는 의생을 교육하였으며, 이들을 대상으로 의과를 시행하게 하였다. 고려 중기의 의학은 당⋅송 의학의 수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실정에 맞는 자주적인 의학으로 발달함으로써, 현존하는 우리 나라 최고의 의학 서적인 향약구급방을 비롯해서 많은 의서가 나오게 되었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국방력 강화에도 기여하였다. 고려 말에 최무선은 화약 제조법을 배워 새로 설치된 화통도감에서 화약과 화포를 제작하였다. 최무선은 이 화포를 이용하여 진포 싸움에서 왜구를 격퇴하여 그 위력을 과시하였다.

건축과 조각

고려 시대의 예술은, 고려 귀족 사회의 특성이 반영되어 귀족적이며 불교적인 색채가 강하였다.

건축에서는 개경의 궁궐을 비롯하여 현화사, 흥왕사 등의 사찰을 많이 건립하였지만, 모두 불타 버렸다.

현존하는 목조 건물은 고려 후기의 것들이다. 이 시기에는 이전부터 유행하던 주심포 양식에다 다포 양식이 새로이 도입되었다. 현존하는 목조 건물로는 봉정사 극락전, 부석사 무량수전, 수덕사 대웅전 등이 있다. 안동의 봉정사 극락전은 주심포 양식으로 된 현존하는 최고의 목조 건물로 알려져 있다.

배흘림 기둥과 주심포 양식을 지닌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은 장중한 외관과 함께 간결한 조화미를 지녀 고려 후기 목조 건축의 대표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또, 고려 말에 건립된 안변의 석왕사 응진전은 다포 양식으로서, 조선 시대의 건축 양식에 큰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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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무량수전 실측도(경북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실측도(경북 영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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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시대의 석탑은 대체로 안정감이 부족하여 조형 감각면에서는 신라 시대의 석탑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느낌이 있다. 그러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연스러운 면을 보여 주고 있다. 그리고 고려 시대의 석탑은 신라 계통에서 벗어나 여러 가지 형식의 것이 만들어졌다. 고려 전기의 대표적인 석탑으로는 개풍의 현화사 7층 석탑, 오대산의 월정사 팔각 9층 석탑 등이 있는데, 특히, 월정사 팔각 9층 석탑은 고려 시대의 다각 다층 석탑을 대표하고 있다. 고려 후기의 석탑으로는 경천사 10층 석탑이 유명하다. 이것은 원의 양식을 본딴 것으로 조선 시대의 원각사지 10층 석탑의 원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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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정사 팔각 9층 석탑(강원 평창)
월정사 팔각 9층 석탑(강원 평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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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사 10층 석탑(서울 경복궁)
경천사 10층 석탑(서울 경복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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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려들의 사리를 안치한 묘탑인 부도는 고려 시대에 들어와 조형 예술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특히, 선종의 유행과 관련하여 장엄하고 수려한 부도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구례 연곡사의 북부도, 공주 갑사의 부도, 여주 고달사지의 원종대사 혜진탑 등은 팔각 원당형의 기본 양식을 지니고 있다. 또,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과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 등도 고려 전기의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불상의 경우, 재료면에서는 석불과 금동불이 주류를 이루었으나, 대형 철불의 제작이 유행하여 고려 불상의 한 특징이 되었다. 제작 수법에서는 신라 시대에 비하여 다소 뒤떨어지는 경향이 있고, 인체 비례가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있어 조형미도 퇴화된 감이 있다.

그러나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자유 분방한 면과 함께 향토적 특색이 나타나게 된 것은 이 시대 불상에 보이는 커다란 변화였다. 이러한 경향은 건국 초기에 만들어진 논산의 관촉사 석조 미륵보살 입상과 같은 거대한 규모의 불상에서 잘 나타난다. 고려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불상으로는 신라 양식을 계승한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을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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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
부석사 소조 아미타여래 좌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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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예

고려 시대의 미술 분야에서 가장 발전을 보인 분야는 공예 부분이다. 고려의 공예는 귀족들의 생활 도구와 불교 의식에 사용되는 불구 등을 중심으로 크게 발전하였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것은 자기 공예였다.

고려자기는 신라 토기의 전통 위에 송의 자기 기술의 영향을 받아 더욱 발달하게 되었다. 10세기 전반기에 자체적으로 자기를 생산하면서 본격적인 발전의 전기를 마련하였다. 이어서 귀족 사회의 전성기인 11세기경에는 고려자기의 독특한 미가 나타났다. 이로 인하여 중국인들도 고려의 자기를 천하의 명품이라 칭찬하였다.

처음에는 청자와 함께 백자가 만들어졌지만, 점차 청자가 주류를 이루며 발전하였다. 청자 초기 단계에서는 주로 그릇 모양과 함께 선을 강조하는 순수 청자가 발달하였다. 12세기 중엽부터는 고려의 독특한 기법인 상감법이 개발되어 상감 청자가 만들어지게 되었는데, 강화에 도읍한 13세기 중엽까지 상감 청자의 전성기를 이루었다. 그러나 원의 간섭기에 들어가면서 퇴락하게 되었다.

고려 청자는 연한 하늘색인 비색의 아름다움과 함께 그릇의 각종 모양과 장식이 조화를 이루는 우아한 형태를 갖춘데다가, 음각과 양각 및 상감법에 의한 독특한 무늬가 어우러져 세련된 아름다움과 고려 문화의 독창성을 창출해 내었다.

청자를 굽던 곳으로는 강진, 부안 등이 유명하며, 특히 강진에서는 청자 초기의 가마 터가 발견되어 보존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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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가마 터(전남 강진)
청자 가마 터(전남 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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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공예와 함께 금속 공예 분야도 큰 발전을 보였다. 특히, 청동기 바탕에 은으로 장식 무늬를 넣은 은입사의 기술이 크게 발달하여, 청동 은입사 포류 수금무늬 정병과 향로 같은 걸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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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동 은입사 포류 수금무늬 정병
청동 은입사 포류 수금무늬 정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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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밖에 신라 시대 양식을 계승한 범종이 많이 제작되었는데, 화성의 용주사 종, 해남의 대흥사에 있는 탑산사 종 등이 대표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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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주사 범종(경기 화성)
용주사 범종(경기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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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불경을 넣는 경함, 화장품갑, 문방구 등에 자개를 붙여 무늬를 나타내는 나전 칠기 공예가 발달하였는데, 이는 조선 시대를 거쳐 오늘날까지 전하고 있다.

서화와 음악

고려 시대 전기의 서예는 왕희지체와 구양순체가 유행하였는데, 특히 귀족들 사이에서는 간결한 구양순체가 환영을 받았다. 대표적인 서예가로는 유신, 탄연, 최우를 들 수 있다. 이들은 신라의 김생과 함께 신품 4현이라고 일컬어졌다. 후기에는 구양순체보다는 조맹부의 우아한 송설체가 유행하였는데, 충선왕 때의 이암이 뛰어났다.

회화는 후기에 와서 왕실과 귀족들이 즐겨 그리면서 감상하고 수집하였으며, 도화원이 설치되어 화원을 두기도 하였다. 대표적인 화가로는 인종 때 예성강도를 그린 이령과 그의 아들 이광필이 유명하지만, 그들의 작품은 전하지 않고 있다. 고려 후기에는 문인화가 유행하였으나, 현재 전해지는 것은 거의 없다. 한편, 공민왕이 그렸다는 천산대렵도가 전해져 당시의 화풍을 잘 보여 주고 있다.

한편, 고려 시대에는 불교 회화가 성행하였다. 고려 후기에 그려진 불화 중 혜허의 양류 관음도가 일본에 전해 오고 있는데, 섬세하고도 화려하여 불화 중에서 대표적인 걸작으로 꼽히고 있다. 부석사 조사당 벽에 그려진 사천왕상과 보살상도 유명하다. 또, 불교 경전을 필사하거나 인쇄할 때, 맨 앞장에 그 경전의 내용을 알기 쉽게 그림으로 설명한 사경화도 유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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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허의 양류 관음도
혜허의 양류 관음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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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국가 의례나 풍속 교화의 측면에서 국가가 관심을 가지고 지원함으로써 발달하게 되었다. 우리 나라 고유 음악인 향악은 속악(俗樂)이라고도 하며, 동동, 대동강 등의 곡이 남아 있다. 악기로는 거문고, 비파, 가야금, 대금, 장고 등이 있었다.

한편, 송에서 수입된 중국 고전 음악인 대성악이 궁중 음악으로 발전하여 아악이라고 일컬어지게 되었다. 아악은 오늘날까지도 격조 높은 전통 음악으로 전해지고 있다. 아악의 전래는 고려 음악의 수준을 한 차원 높였다고 할 수 있다. 이와는 달리 당악이라 하여 송의 속악이 문종 때에 전래되어 향악과 함께 연주되면서 고려 음악의 발전에 영향을 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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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사 악지
고려사 악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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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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