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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 경제 활동

(3) 경제 활동

농업

조선 정부의 중농 정책과 농민들 스스로 생산력을 향상시키려는 노력이 일치되어 농업 기술이 크게 발달하였다.

우선, 개간 사업으로 농경지가 확대되었다. 그리고 각종 수리 시설을 확충하고 농법을 개량하여 농업 생산력의 증대에 주력하였다. 향촌의 사람들도 직접 농업 경영에 참여하여 생산에 힘쓰고 있었다.

농업 기술이 발달하여 조, 보리, 콩의 2년 3작이 널리 행해졌는데, 남부 일부 지역에서는 모내기가 실시되기도 하였다. 또, 밑거름과 덧거름을 주는 시비법의 발달로 해를 걸러서 휴경하지 않고 매년 토지를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 또, 목화 재배도 확대되어 의생활의 개선을 가져왔으며, 약초, 과수 재배 등이 보급되었다. 그리고 농사직설, 금양잡록 등이 간행되어 농업 기술이 널리 보급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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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사직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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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기술의 향상에도 불구하고 생산에 종사하는 대부분의 농민들은 지주들에게 수확의 상당 부분을 빼앗기면서 토지에서 유리되었다. 이러한 농민들의 유리 현상은 중요한 사회 문제가 되었다.

이에, 정부는 잡곡, 도토리, 나무 껍질 등을 가공하여 먹는 방법을 제시하여, 농민의 최소한의 생활을 보호함으로써 토지에서의 유리를 방지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호패법, 오가작통법 등을 강화하여 농민의 유망을 막고 통제를 더욱 엄히 하였다. 지주층인 사족들도 향약, 사창제 등을 통하여 농촌 사회의 안정을 추구하였다.

수공업

조선 초기의 수공업은 대체로 관영 수공업 체제가 중심이었다. 공장은 공장안에 등록되어 각급 관청에 소속되고, 관청에서 필요한 물품을 제작, 공급하였다. 관청에 등록된 장인, 즉 관장들은 의류, 활자, 화약, 무기, 문방구, 그릇 등을 제조하여 납품하였다. 이들은 자신의 책임량을 초과한 생산품에 대해서는 세를 내고 판매하였다.

관장 이외에 민영 수공업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은 주문받은 물품을 제작, 공급하였다. 민영 수공업자들은 대체로 양반의 사치품을 비롯하여 농민들의 농기구를 주로 생산하였다.

이 밖에 농가에서 자급 자족의 형태로 생활 필수품을 만드는 가내 수공업이 있었다. 의류로는 면포, 명주, 모시, 삼베 등이 생산되었는데, 특히 면포 생산이 가내 수공업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였다.

상업과 화폐

조선 초기의 상업은 국가 통제하에 있는 시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국가는 경시서를 두어 시전을 감독하였다. 여기서는 도량형을 검사하고 물가를 조절하여 상업을 통제하였다.

정부는 시전으로 하여금 국가가 필요로 하는 물품을 조달, 공급하도록 하였다. 시전은 종로 도로변에 있었는데, 정부에서는 점포를 지어 상인들에게 대여하고 점포세와 상세를 거두었다. 시전 상인들은 관청에 물품을 공급하고, 대신 특정 상품에 대한 독점 판매권을 부여받았다. 이들 시전 중에서 비단, 종이, 어물 등을 파는 점포가 가장 번성하였는데, 후에 이를 육의전이라 하였다.

수도 근교와 지방에는 장시가 발달하였다. 15세기 후반부터 대두하기 시작한 장시는 농업 생산력의 발달로 번창하였다. 장시는 5일장으로 정착해 갔으며, 16세기 중엽에 이르면서 전국적인 유통망이 형성되었다. 주로 보부상에 의해서 농산물, 수공업 제품, 수산품, 약재 등이 유통되었다.

조선 초기의 화폐로는 저화, 조선통보 등이 만들어졌으나, 일반 사회에까지 널리 유통되지는 못하였다. 교역의 매개는 주로 쌀과 면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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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통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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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시대의 국제 무역은, 명과는 사신들의 왕래에 따른 조공 무역과 사무역이, 여진과는 무역소를 통한 교역이, 그리고 일본과는 왜관 무역이 주로 이루어졌다. 국경 부근에서는 약간의 사무역도 이루어졌다. 사무역은 엄격한 감시하에 이루어졌는데, 이 때 주로 거래된 물화는 면포와 식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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