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민 문화의 대두

조선 후기에는 농민들의 경제력이 향상되고 서당 교육이 널리 보급됨에 따라 그들의 의식도 확대되고 사회적 지위도 점차 상승되었다. 이러한 상황은 문화계에도 반영되어, 종래의 양반 중심적인 문예 활동에 대신하여 일반 서민들이 창작하고 향유하는 문학과 예술이 대두하였다. 특히, 역관이나 서리 등 중인층의 문예 활동이 활발하였고, 상민이나 광대들에 의해서 우리의 독특한 문학 장르인 판소리가 보급되기도 하였다.

조선 전기의 문학 작품은 대개 성리학적 윤리관을 강조하는 것이었으며, 생활의 교양이나 심성 수양의 정도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림이나 음악 등 예술도 양반들의 교양이나 여가를 위한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사회 변화가 크게 나타난 조선 후기에는 문학이나 예술 작품에 인간의 감정이 적나라하게 묘사되고, 사회의 부정과 비리에 대하여 신랄하게 고발하고 있었다.

문학 작품의 주인공들도 영웅적인 존재로부터 이름 없는 서민적인 인물로 전환되어 갔고, 문학의 배경도 비현실적인 세계보다는 현실적인 인간 세계로 옮겨 가고 있었다. 예술 작품도 민화에서처럼 서민들이 작자인 경우가 적지 않았다.

한글 소설과 사설시조

조선 후기의 문학에서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한글로 쓰여진 작품이 많이 나타나고, 그 형식도 주로 소설이나 사설시조로 바뀐 점이다.

최초의 한글 소설로 알려진 허균의 홍길동전은, 서얼 차별의 철폐와 탐관 오리에 대한 응징을 주장하는 등 현실을 날카롭게 비판하였다.

한편, 최대의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는 춘향전은 원래 판소리의 형태를 취하고 있었는데, 여기에서는 상민이나 천민도 양반과 동등한 인격의 소유자임을 말하고 있다. 당시의 민중들은 수령에 대한 춘향의 항거를 통해서 인간 평등의 문제를 깨우칠 수 있었고, 춘향이 자기의 사랑을 실현하는 결말에서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질 수 있었다.

그 밖에, 사씨 남정기, 구운몽, 장화홍련전, 콩쥐팥쥐전 등이 널리 읽혀졌다. 이들 대부분은 당시 민간 사회에서 전승되고 있던 야담이나 민담을 작품화한 것이다.

한편, 시조 문학에서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났다. 종래의 시조가 사대부들이 그들의 기상이나 절의를 나타내고자 했음에 비하여, 조선 후기의 시조는 서민들이 중심이 되어 그들의 생활상이나 남녀 사이의 사랑을 읊었고, 또 기탄 없는 비유를 통하여 현실을 비판하였다. 시조의 형식도 서민들의 소박한 감정을 사실적으로 묘사하고자 하면서, 격식에 구애받지 않는 사설시조로 바뀌었다.

조선 후기 사회에서 크게 환영을 받은 문학 장르는 판소리였다. 한 편의 이야기를 창과 아니리로 엮어 나가는 판소리는 광대들이 가창과 연극으로 연출하여, 읽는 소설보다 훨씬 흥미를 돋우었다.

춘향가, 심청가, 흥부가, 배비장타령 등은 매우 인기 있는 판소리 작품으로, 조선 후기 서민의 문화 생활을 풍요롭게 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러한 판소리 사설의 창작과 정리에 공헌한 사람은 19세기 후반의 신재효였다.

한문학도 국문학의 발달에 따라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다. 비록 한글로 표기되지는 않았다고 하여도, 이 시기의 한문 소설은 사회의 부조리를 예리하게 비판하고 있었다. 당시의 대표적인 한문 소설로는 박지원의 여러 작품들을 들 수 있다. 그는 양반전, 허생전, 호질, 민옹전 등을 통해 양반들의 위선적인 생활을 풍자하고 이상적인 사회를 그려 냄으로써 자신의 실학 정신을 간접적으로 표현하였다. 그리고 그는 비록 한문체이기는 하였지만, 옛 틀에서 벗어나 자유로운 문체를 개발하여 문체의 혁신을 시도하기도 하였다.

서민들의 문학 창작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동인들이 모여 시사(詩社)¹⁾ 시사는 시인 동우회였다. 중인은 중인끼리, 상민은 상민끼리 시사를 조직하였는데, 대표적인 시사로는 천수경의 옥계 시사, 최경흠의 직하 시사 등이 있었다. 이들 시사에서는 동인지를 간행하기도 하였다.를 조직하여 같이 즐기기도 하였고, 정수동, 김삿갓 같은 풍자 시인은 민중 사회와 어우러져 활동하기도 하였다.

예술의 새 경향

조선 전기의 회화는 중국의 화풍을 바탕으로 하여 한국적 특성을 나타내었다. 그러나 조선 후기에 들어와서는 더욱 뚜렷한 자아 의식을 바탕으로 하여 우리의 자연을 직접 눈으로 보고 사실적으로 그리는 등 화풍의 변화가 나타났다. 이른바 진경 산수화가 출현한 것이다.

진경 산수화의 개척자는 정선이었다. 그는 그리고자 하는 산수를 몇 차례에 걸쳐 답사하면서 우리 나라의 자연을 그려 내는 데에 알맞은 구도와 화법을 창안해 내었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인왕제색도와 금강전도를 꼽을 수 있다.

이들 그림은 우리 나라 명산의 절경을 새로운 화법을 구사하여 그린 것으로, 산수화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그림에서 또 하나의 두드러진 특징은 풍속화의 유행이었다. 화가들은 조선 후기의 사회⋅경제적 변동으로 나타난 새로운 현상들을 긍정적 의미로 이해하여 화폭에 담고자 하였다. 풍속화의 대가는 김홍도였다. 그는 서민을 주인공으로 하여 밭갈이, 추수, 집짓기, 대장간 등 주로 농촌의 생활상을 그리면서 땀 흘려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 생활을 소박하고 익살맞게 묘사하였다.

풍속화에서 김홍도와 함께 쌍벽을 이룬 신윤복은 주로 도회지 양반의 풍류 생활과 부녀자의 풍습, 그리고 남녀 사이의 애정을 묘사하였다. 기법에 있어서는 김홍도가 간결하고 소탈하게 그렸는 데 비하여, 신윤복은 섬세하고도 세련된 필치를 구사하였다.

한편, 18세기 말 이래로는 원근법 등 서양화법의 영향이 그림에 반영되었다. 강세황, 김수철 등의 작품에 그것이 나타나 있다.

이와 아울러 조선 후기에는 민화가 발달하였다. 주로 해, 달, 나무, 꽃, 동물, 물고기 등이 그림의 소재였는데, 이들 그림도 민중의 기복적 염원과 미의식을 잘 표현하고 있다. 다만, 민화는 예술적 감상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생활 공간을 장식하기 위한 그림이었기 때문에 그 내용이나 발상 등에는 한국적인 정서가 더욱 짙게 담겨져 있다.

서예에서는 김정희가 고금의 필법을 깊이 연구하여 자기 개성에 맞게 발전시킨 추사체로 서예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하였고, 전기, 오경석 등이 그의 필법을 이었다.

이 밖에 도자기 공예에서는 백자가 계속 유행하였는데, 조선 후기에는 청화 백자가 더욱 발달하였다. 청화 백자는 흰 바탕에 푸른 색깔로 그림을 그려 넣은 것으로, 청아한 한국적인 정취를 자아내고 있다. 이와 더불어 서민들은 옹기를 즐겨 사용하였다.

건축에서 특기할 만한 것은 18세기 말에 완성된 수원성이다. 수원성은 종래의 성곽과는 달리 화포를 배치하여 적을 공격할 수 있도록 건축되었다. 이것은 공학상으로도 견고할 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의 전통적인 성곽 양식의 장점을 살린 위에 서양식 건축 기술을 도입하여 축조한 특색 있는 건축물이다.

조선 후기의 건축물은 현존하고 있는 것이 많다. 17세기의 금산사의 미륵전, 화엄사의 각황전, 법주사의 팔상전, 18세기의 평양의 대동문, 불국사의 대웅전, 그리고 19세기의 경복궁 근정전과 경회루 등은 건축미가 돋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