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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 식민지 문화 정책

(1) 식민지 문화 정책

우민화 교육과 언론 정책

일제는 정치적, 사회적 탄압과 경제적 수탈 못지않게 문화면에서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우리 민족의 활동을 통제하였다.

먼저 교육에서는 우민화 교육을 통하여 이른바 한국인의 황국 신민화를 꾀하였다. 이와 같은 목표에 따라, 우리 민족은 우리말 대신 일본어를 배우도록 강요당하였고, 각급 학교의 교과서는 그들의 침략 정책에 맞도록 편찬되었다. 그들은 사립 학교나 서당 등 민족주의 교육 기관을 억압하였고, 다만 초급의 실업 기술 교육을 통하여 자신들의 식민지 통치에 유용한 하급 기술 인력의 양성만을 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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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교육에 이용된 교과서들
식민지 교육에 이용된 교과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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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일 전쟁 이후에는 더욱 혹독한 식민지 교육 정책이 실시되었다. 즉, 일제가 내세운 내선 일체, 일선 동조론, 황국 신민화와 같은 허황된 구호 아래 우리말과 우리 역사의 교육은 일체 금지되었으며, 이에 항거하는 학교는 폐쇄되었다.

한편, 국권 침탈과 함께 한국인의 언론⋅집회⋅결사의 자유가 박탈되고, 일제의 식민 통치에 항거하는 신문은 모두 폐간되었으나, 3⋅1 운동 이후에는 이른바 문화 통치에 의해 조선 일보, 동아 일보의 발행이 허가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들 민족지들은 일제의 검열에 의해 기사가 삭제되거나 정간, 폐간되고, 언론인들이 구속되는 등 온갖 박해를 받았다.

한국사의 왜곡과 종교 탄압

일제는 민족의 긍지와 유대감을 심어 주는 우리의 민족사를 그들의 식민 통치에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하였다. 특히, 민족사의 근원이 되는 고대사 부문의 왜곡이 가장 심하여 단군 조선이 부정되었고, 한국사의 타율성과 정체성이 강조되어 민족의 자율성과 독창성 등이 무시되었다.

종교 활동도 온갖 탄압을 당하였다. 일제의 기독교 세력 분쇄 음모에 의해 이른바 안악 사건, 105인 사건이 날조되었고, 3⋅1 운동 이후에는 많은 교회 지도자들이 독립 운동에 가담하였다고 하여 체포, 투옥되었다. 특히, 1930년대 후반 이후에는 신사 참배가 강요되었으며, 이를 반대하는 종교 계통의 학교는 폐쇄되고, 기독교 지도자들은 투옥되었다.

불교에서도 사찰령, 승려법 등이 제정되어 많은 탄압을 받았다. 천도교와 대종교 등의 민족 종교는 일제의 감시와 간섭이 특히 심하여 활동의 자유가 크게 제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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