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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Ⅳ. 현대 사회의 발전
  • 5. 현대 문화의 동향
  • (1) 교육과 학술 활동

(1) 교육과 학술 활동

교육 활동

대한 민국 정부는 헌법에 의무 교육을 규정하였고, 교육법에서는 홍익 인간을 교육의 기본 이념으로 내세웠다. 홍익 인간은, 사람들이 배워 얻은 것을 더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어 주고, 모든 이에게 이로움이 될 수 있게 하자는 것이며, 이는 곧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함께 잘 살 수 있게 하자는 것이다. 홍익 인간은 우리 민족이 간직해 온 민족 정신의 원류이며, 우리 나라 건국의 기본 이념이기도 하다. 현실적으로 이 정신은 오늘의 민주 시민 사회에서도 인류 공영을 지향하는 민주주의의 이념과 부합되는 것이다.

정부는 건국 직후부터 본격적으로 민족 교육의 기반을 마련하고자 하였으며, 의무 교육 제도를 충실하게 시행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6⋅25 전쟁으로 인하여 교육 환경은 대단히 열악한 상태에 놓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피난지의 천막 교실에서도 우리의 교육은 포기되지 않았다.

전쟁 중에 우리 교육의 목표는 멸공 통일의 신념을 젊은 세대에 심어 안보 의식을 고취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또, 이 과정에서 도의 교육을 진작시키기 위해 힘을 기울였고, 과학과 기술 교육을 강화하기 위해서 1인 1기 교육을 실시하였다.

휴전이 되고 서울로 환도한 이후에는 교육을 재건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며, 부서진 교육 시설의 복구에 온 힘을 기울였다. 그리고 교육 과정도 새롭게 편성하여 전시 교육의 성격으로부터 정상적인 민주 시민 교육으로 옮겨 가게 되었다.

4⋅19 혁명을 계기로, 교육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일어나 교육 본래의 목표를 추구하려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그리하여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 추구되었으며, 사도의 확립과 학원의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5⋅16 군사 정변으로 교육계도 급변하였다.

조국 근대화를 우선 과제로 삼았던 군사 정부는 교육에서도 이른바 인간 개조 운동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사회 교육에서는 재건 국민 운동을 강력하게 추진해 나갔다. 뿐만 아니라, 교육 관계 특례법을 제정해서 교육 자치제를 폐지시켰다.

박정희 정부에 들어와서 교육 자치제가 명목상으로는 부활되었지만, 교육의 중앙 집권화와 관료적 통제는 지속되었다. 이 시기에 국민 교육 헌장이 선포되었는데, 이는 우리 사회의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밝힌 것으로 민족적 정통성과 현대의 과학 정신, 그리고 실사구시가 우리 교육의 지향 목표임을 밝히고 있다.

정부는 그 당시 어린 학생들에까지 행하여졌던 과외 공부를 없애기 위해서 중학교 무시험 진학 제도를 실시하였다. 그리고 대학의 질적 수준을 높이기 위해서 대학 입학 예비 고사와 학사 자격 고시를 시행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부터 교육 시설도 개선, 확충되었고, 국민의 높은 교육열로 교육 인구는 크게 증가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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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시험 진학 발표에 환호하는 어린이들
무시험 진학 발표에 환호하는 어린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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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에는 안보 교육과 함께 새마을 교육이 실시되었다. 교육 문제를 연구하기 위해서 한국 교육 개발원이 설립되었으며, 사회 교육을 확대하기 위해서 방송 통신 교육도 실시되었다. 또, 이 시기에 우리 나라의 정신 문화와 전통적 가치를 연구하고 바람직한 민족 사회의 미래를 밝히기 위해서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이 발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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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방송 통신 고등 학교 학예 경연 대회
전국 방송 통신 고등 학교 학예 경연 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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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에 정부는 입시 과외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힘썼으며, 1990년대에 들어와서는 21세기의 정보화, 세계화 시대에 능동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인간을 육성하기 위한 교육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학술 연구 활동

일제 식민지하에서 우리 학계가 겪어야 했던 고난과 해독은 대단히 컸다. 그러므로 광복 이후 우리 학계가 해결해야 할 과제는 먼저 식민지 잔재를 없애는 일이었으며, 민족 국가의 발전을 이룩하기 위한 정신적 토대와 이념을 설정하고 민주 시민 사회의 학문적 기반을 마련하는 일이었다.

광복 이후 학술 연구 활동은 1950년대까지는 초보적인 단계에 놓여 있었다. 일제 식민지 통치에 의해서 왜곡되었던 국사학과 국어학, 국문학을 비롯해서 사회 과학, 심지어 예술에 이르기까지 그것을 바로잡고, 새로운 연구 기반을 마련해야 하는 일이 매우 시급한 과제였다. 그 중에서도 특히 일제의 식민 사관에 의해 왜곡되었던 우리의 역사를 바로잡는 일과, 객관적인 학문 연구를 통한 올바른 민족주의 사학의 정립이 급선무였다. 이 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전통 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다져지고 학문적으로도 많은 성과를 거두었다.

196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 한국학 분야의 연구가 고조되었는데, 이는 우리 것에 대한 올바른 연구를 통해서 독자적인 학문 체계를 수립함과 동시에, 현실 상황을 사실적으로 파악하려는 실사구시적인 학문 연구에 토대한 것이었다.

이러한 학문 연구를 위해서 많은 학술 연구 단체들이 결성되었으며, 이들을 중심으로 하여 학문 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1970년대 이후부터 우리의 학문 연구는 광복 이후의 연구 성과를 정리함과 동시에 새롭게 연구 결과를 평가하고 새로운 연구 방법으로 문제를 극복해 가려는 연구 경향을 보여 주었다. 새로운 연구 방법이 도입되었고, 연구 범위도 확대되었으며, 연구 방향도 재정립되었다. 또, 국사 편찬 위원회를 중심으로 하여 사료의 수집⋅정리 및 한국사의 연구와 사서 편찬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고, 한국 정신 문화 연구원에서 한국 민족 문화 대백과 사전을 출간하는 등 한국학의 총체적인 연구가 점차 그 자리를 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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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 편찬 위원회
국사 편찬 위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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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자연 과학 분야의 학술 연구 활동에서도 두드러진 업적이 이룩되었다. 대학의 설립과 해외 유학생의 증가로 많은 연구 인력을 확보할 수 있게 되었으며, 한국 과학 기술원 등 각종 연구 기관의 설립과 정부의 지속적인 과학 연구에 대한 지원 정책으로 첨단 과학 분야에 이르기까지 획기적인 발전이 이루어졌다. 최근에는 산학 협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며, 그 결과 민간 연구소의 연구 활동도 두드러지게 나타나 세계 수준의 과학적인 연구 업적이 이루어지는 등 비약적인 발전이 거듭되고 있다.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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