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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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Ⅱ. 선사 시대의 문화와 국가의 형성
  • 2. 국가의 형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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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구려

고구려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르면 고구려는 부여에서 남쪽으로 내려온 주몽이 건국하였다(기원전 37). 주몽은 부여의 지배 계급 내의 분열, 대립 과정에서 박해를 피해 남하하여 독자적으로 고구려를 건국하였다. 고구려는 압록강의 지류인 동가강 유역의 졸본(환인) 지방에 자리잡았다. 이 지역은 대부분 큰 산과 깊은 계곡으로 된 산악 지대였기 때문에 농토가 부족하여 힘써 일을 하여도 양식이 부족하였다.

고구려는 건국 초기부터 주변의 소국들을 정복하고 평야 지대로 진출하고자 하였다. 그리하여 압록강 가의 국내성(집안)으로 옮겨 5부족 연맹을 토대로 발전하였다. 그 후, 활발한 정복 전쟁으로 한의 군현을 공략하여 요동 지방으로 진출하였을 뿐만 아니라, 동쪽으로는 부전 고원을 넘어 옥저를 정복하여 공물을 받았다.

고구려도 부여와 마찬가지로 왕 아래에 상가, 고추가 등의 대가들이 있었으며, 각기 사자, 조의, 선인 등 관리를 거느렸다. 그리고 중대한 범죄자가 있으면 제가 회의를 통하여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을 노비로 삼았다. 또, 고구려에는 서옥제라는 풍속이 있었다. 그리고 건국 시조인 주몽과 그 어머니 유화 부인을 조상신으로 섬겨 제사를 지냈고, 10월에는 추수감사제인 동맹이라는 제천 행사를 성대하게 치르고, 아울러 왕과 신하들이 국동대혈에 모여 함께 제사를 지냈다.

읽기자료

고구려 건국 이야기

시조 동명성왕은 성이 고씨이며, 이름은 주몽이다. …… 부여의 금와왕이 태백산 남쪽에서 한 여자를 만나게 되어 물은즉, 하백의 딸 유화라 하는지라, …… 금와왕이 이상히 여겨 그녀를 방에 가두어 두었는데, 햇빛이 따라와 비추었다. 그녀는 몸을 피하였으나, 햇빛이 따라와 기어이 그녀를 비추었다. 이로 인하여 그녀는 잉태하였고, 마침내 알 하나를 낳았다. …… 한 사내아이가 껍데기를 깨고 나왔다.
기골과 모양이 뛰어나고 기이했다. 일곱 살에 의연함이 더하였고, 스스로 활을 만들어 쏘는데 백발백중이었다. 부여의 속어에 활 잘 쏘는 것을 주몽이라 하니, 이로써 이름을 삼았다. ……
주몽의 어머니가 비밀을 알고 아들에게, “장차 이 나라 사람들이 너를 죽이고자 하니, 너의 재간으로 어디 간들 못 살겠느냐? 지체하다가 욕을 당하지 말고 멀리 도망하여 큰일을 이루어야 한다.”라고 타일렀다. 주몽은 그를 따르는 세 사람과 함께 도망하여 강가에 이르렀다. 그러나 다리가 없어 강을 건널 수 없었고, 추격병이 뒤따라오고 있었다. 주몽이 강물에 고하여, “나는 천제의 아들이고 하백의 외손이다. 오늘 도망하여 여기까지 왔으나, 추격병이 쫓아오고 있다. 어떻게 하면 좋겠는가?”라고 외치자, 물고기와 자라가 떠올라 다리를 만들어 주니, 주몽이 강을 건널 수 있었다. …… 졸본천으로 갔다. 그 곳 땅이 기름지고 아름다우며 산천이 험하였다. 마침내 이 곳에 도읍하기로 하였다. …… 나라 이름을 고구려라 하고, 고를 그의 성씨로 삼았다. 〈삼국사기

서옥제(婿屋制)

혼인을 정한 뒤 신부집 뒤꼍에 조그만 집을 짓고, 거기서 자식을 낳아 장성하면 아내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돌아가는 제도이다.
국동대혈(중국 길림성 집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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