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 7차 교육과정
  • 고등학교 국사 7차
  • Ⅲ. 통치 구조와 정치 활동
  • 3. 근세의 정치
  • [6] 양 난의 극복
  • 전란의 극복과 영향

전란의 극복과 영향

수군의병의 승전으로 조선은 전쟁 초기의 수세에서 벗어나 반격을 시작하였다. 아울러 명의 원군이 전쟁에 참여하면서 전쟁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조⋅명 연합군은 평양성을 탈환하였으며, 관군과 백성이 합심하여 행주산성 등에서 적의 대규모 공격을 물리쳤다.

이후 명과 경상도 해안으로 밀려난 왜군 사이에 휴전 협상이 이루어졌으며, 조선도 전열을 정비하여 왜군의 완전 축출을 준비하였다. 훈련도감을 설치하여 군대의 편제와 훈련 방법을 바꾸었고, 속오법을 실시하여 지방군 편제도 개편하였으며, 화포를 개량하고 조총도 제작하여 무기의 약점을 보완하였다.

3년여에 걸친 명과 일본 사이의 휴전 회담이 결렬되자, 왜군이 다시 침입해 왔다(1597). 이를 정유재란이라 한다. 그러나 조⋅명 연합군이 왜군을 직산에서 격퇴하고 이순신이 적선을 명량에서 대파하자, 왜군은 남해안 일대로 다시 후퇴하였다. 전세가 불리해진 왜군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죽자 본국으로 철수하였다.

임진왜란은 국내외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국내적으로는 왜군에 의해 수많은 인명이 살상되었을 뿐만 아니라, 기근과 질병으로 인구가 크게 줄어들었다. 토지 대장과 호적의 대부분이 없어져 국가 재정이 궁핍해지고, 식량도 부족해졌다. 또, 왜군의 약탈과 방화로 불국사, 서적, 실록 등 수많은 문화재가 손실되었고, 수만 명이 일본에 포로로 잡혀갔다.

일본은 조선에서 활자, 그림, 서적 등을 약탈해 갔고, 성리학자와 우수한 인쇄공 및 도자기 기술자 등을 포로로 잡아가 일본의 성리학과 도자기 문화가 발달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한편, 조선과 명이 일본과 싸우는 동안 북방의 여진족이 급속히 성장하여 동아시아의 정세가 크게 변화하였다.

일본에 잡혀간 도자기 기술자

이삼평을 비롯한 도자기 기술자들은 일본에 끌려가 일본 도자기의 발달에 결정적으로 기여하였다. 이에, 임진왜란을 도자기 전쟁이라고도 한다.
관군과 의병의 활동
중완구(복원품)

개요
팝업창 닫기
책목차 글자확대 글자축소 이전페이지 다음페이지 페이지상단이동 오류신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