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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과 관계

임진왜란으로 침략을 받은 조선은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단절하였다. 그러나 일본의 에도 막부는, 경제적인 어려움을 해결하고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쓰시마 섬 도주를 통하여 조선에 국교를 재개하자고 요청해 왔다. 조선은 막부의 사정을 알아보고 전쟁 때 잡혀간 사람들을 데려오기 위하여 유정(사명대사)을 파견하여 일본과 강화하고 조선인 포로 3500여 명을 데려왔다(1607). 한편 동래부에 다시 왜관을 설치하고, 일본과 기유약조를 맺어 제한된 범위 내에서 교섭을 허용하였다(1609).

한편, 일본은 조선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고, 에도 막부의 쇼군(將軍)이 바뀔 때마다 그 권위를 국제적으로 인정받기 위하여 조선에 사절의 파견을 요청해 왔다. 이에 조선에서는1607년부터 1811년까지 12회에 걸쳐 통신사라는 이름으로 사절을 파견하였다. 통신사 일행은 적을 때에는 300여 명, 많을 때에는 400~500명이나 되었고, 일본에서는 국빈으로 예우하였다. 일본은 이들을 통하여 조선의 선진 학문과 기술을 배우고자 하였다. 따라서, 통신사는 외교 사절로서 뿐만 아니라, 조선의 선진 문화를 일본에 전파하는 역할도 하였다.

한편, 울릉도와 독도는 삼국 시대 이래 우리의 영토였으나, 일본 어민이 자주 이 곳을 침범하여 충돌이 빚어지기도 하였다. 숙종 때, 안용복은 울릉도에 출몰하는 일본 어민들을 쫓아 내고, 일본에 건너가 울릉도와 독도가 조선의 영토임을 확인받고 돌아왔다. 그 후에도 일본 어민의 침범이 계속되자, 19세기 말에 조선 정부에서는 적극적으로 울릉도 경영에 나서 주민의 이주를 장려하였고, 울릉도에 군을 설치하여 관리를 파견하고 독도까지 관할하게 하였다.

통신사 행렬도(국사 편찬 위원회 소장)
통신사의 행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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