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경제 침략이 본격화되자, 이에 반대하여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자는 경제적 구국 운동이 활발해졌다. 러⋅일 전쟁 때 일제가 황무지 개간을 구실로 막대한 국유지를 빼앗으려 하자, 보안회를 중심으로 강력한 반대 투쟁이 일어나 이 요구를 좌절시켰다.
1905년 이후에 일제 침략이 강화되고 경제가 어려워지자, 국권 회복의 일환으로 실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회사 설립과 인재 육성에 나선 이들이 많았다.
1907년에는 국민 모금으로 정부가 진 빚을 갚아서 경제 자립과 국권 수호를 이룩하자는 국채 보상 운동이 일어났다. 이 운동은 상공인과 지식인들로부터 시작되어 전 국민으로 확산되었다. 이에 따라 많은 사람이 담배를 끊어 절약한 돈이나, 비녀와 가락지 등과 같은 패물을 팔아 마련한 돈을 성금으로 내어 활발한 운동을 전개하였으나, 일제의 방해로 큰 성과를 이루지 못하였다.
국채 보상 운동 취지서
무릇 신민 된 자가 충성과 의리를 가지면 그 나라가 흥하고 백성이 평안하며, 충성과 의리가 없으면 그 나라가 망하고 백성도 절멸하는 것은 비단 고금의 역사상 증거가 뚜렷할 뿐 아니라, 현재 유럽의 여러 나라 중에 부강한 나라와 멸망한 나라가 충성과 의리의 여하에 말미암지 않은 나라가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