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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포들의 국외 이주

19세기 후반에 조선 사회에는 가난과 수탈, 자연 재해 등으로 생계가 어려운 사람이 많았다. 그들 중에 일부는 새로운 생활 터전을 찾아 만주와 간도, 연해주, 일본, 미주 등지로 떠났다.

우리 동포가 맨 처음 이주한 지역은 만주와 연해주였다. 특히, 만주 지역은 압록강과 두만강만 건너면 되고, 개척할 농경지도 많았으며, 수렵이나 벌목으로도 생계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만주 지역으로 이주한 동포들은 황무지를 개간하고 농사를 지었다. 1910년 무렵, 간도를 비롯한 만주 지역에는 한인이 20만 명을 넘었다.

일제의 탄압을 피해 이 곳으로 이주해 온 의병과 애국 계몽 운동가들은 독립 운동을 계속하였다. 이들은 학교를 세워 민족 의식을 고취하고, 독립군을 양성하는 등 독립 운동의 기반을 마련하거나, 국내와 연결하여 독립 운동을 펼쳐 나갔다.

러시아는 연해주를 개척할 목적으로 한인의 이주를 허가하였다. 이에 따라 우리 동포는 두만강을 건너가 러시아 정부가 준 토지를 경작하거나 황무지 등을 개간하였다. 이후, 블라디보스토크, 하바롭스크 등 연해주 곳곳으로 한인이 이주해 왔다. 20세기 초, 연해주에는 8만 명이 넘는 한인이 모여 살았다.

연해주의 한인은 집단으로 거주하면서 100여 개에 이르는 신한촌을 세웠다. 이 곳에 자치 기구를 만들고 학교를 세워 민족 의식을 불어넣었다. 을사조약 이후에 연해주 지역은 국권 회복을 위한 무장 투쟁의 중심지가 되었다.

미주 이주는 1902년 하와이 이민으로 시작되었다. 미국 하와이 농장주들이 노동자를 구하기가 어렵게 되자, 대한제국 정부에 한국 농민의 이민을 요청해 왔다. 그리하여 우리 농민은 정부의 해외 취업 알선을 받아 하와이에 첫발을 내디뎠다. 이주가 시작된 지 3년 만에 하와이에는 7000여 명의 동포가 살게 되었다.

하와이로 이민 간 동포는 사탕수수 농장일뿐만 아니라, 철도 공사, 개간 사업 등 고된 일을 하면서 인종 차별까지 당했다. 이러한 어려운 환경에서도 학교와 교회 등을 세우고, 자치 단체를 만들어 한인 사회를 발전시켰다. 그리고 그들 중의 일부는 미국 본토, 멕시코, 쿠바 등지로 이주해 갔다.

연해주

원래는 청나라의 영토였으나, 1860년 러시아가 베이징 조약을 중재한 대가로 얻은 영토
한민족의 해외 이주(1890~1930년대)
간도 동포의 생활 모습
미주 동포(캘리포니아 농장)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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