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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회

1920년대 중반에 비타협적인 민족주의 세력은 타협론자들의 자치 운동을 경계하며, 사회주의 세력과 연대하여 이를 저지하려 하였다. 사회주의 세력도 1926년 ‘정우회 선언’을 발표하여 이에 호응하였다.

결국, 비타협적 민족주의자와 사회주의자들은 이념과 노선의 차이를 뛰어넘어 민족 협동 전선을 결성하기로 의견을 모아 신간회가 창립되었다(1927. 2.)

신간회는 한국인 본위의 교육 실시, 착취 기관 철폐 등을 주장하였고, 사회 운동도 적극적으로 지원하였다. 특히, 원산 노동자 총파업의 지원, 갑산 화전민 학살 사건에 대한 진상 규명 운동을 전개하였다. 또, 1929년에 광주 학생 항일 운동이 일어나자 현지에 조사단을 파견하고, 조사 결과를 발표할 민중 대회를 준비하였으나, 경찰의 탄압으로 좌절되었다.

신간회는 민중 대회 사건 후, 새 집행부의 투쟁 방법을 둘러싸고 내부에서 민족주의 세력과 사회주의 세력 사이에 대립이 생겨 해체되고 말았다. 하지만, 신간회는 국내 민족 운동 세력의 역량을 총결집시켰다.

읽기자료

정우회 선언

“민족주의적 세력에 대하여는 그 부르주아 민주주의적 성질을 분명히 인식함과 동시에 과정상의 동맹자적 성질도 충분하게 승인하여, 그것이 타락되지 않는 한 적극적으로 제휴하여 대중의 이익을 위해서도 종래의 소극적인 태도를 버리고 싸워야 할 것이다.” 〈조선 일보, 1926. 11. 17.〉

자치 운동

절대 독립이나 독립 전쟁 대신 일제의 지배를 인정하는 범위 내에서 자치권을 획득하자는 운동

갑산 화전민 학살 사건

1929년 6월 16일, 일제가 함경 남도 갑산군 보혜면 대평리 펑퍼물에서 저지른 화전민 학살 사건
신간회의 창립을 알리는 신문 기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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