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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교의 수용

불교의 수용

삼국은 중앙 집권 체제의 확립과 지방 세력의 통합에 힘쓰던 4세기에 불교를 수용하였다. 이는 새로운 국가 정신의 확립에 기여하고 강화된 왕권을 이념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사상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신라의 여러 왕이 불교식 이름을 가졌으며, 원광은 젊은이들에게 세속 5계를 가르쳤다. 또, 불교의 전래와 함께 사상을 비롯한 음악, 미술, 건축, 공예, 의학 등 선진 문화도 폭넓게 수용되었다. 불교는 새로운 문화 창조에도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삼국은 불교를 신앙으로 널리 수용하였다. 고구려와 백제에서는 사상적으로 불교를 이해하는 데에도 상당히 높은 수준이었다. 특히, 신라에서는 불교가 왕권과 밀착되어 성행하였다. 신라에서는 사람의 행위에 따라 업보를 받는다는 업설과, 미륵불이 나타나 이상적인 불국토를 건설한다는 미륵불 신앙이 널리 받아들여졌다.

삼국에는 도교도 전래되어 산천 숭배나 신선 사상과 결합하여 귀족 사회를 중심으로 환영을 받았다. 백제의 산수무늬 벽돌은 자연과 더불어 살고자 하는 사람들의 생각을 담고 있으며, 백제 금동 대향로는 신선들이 사는 이상 세계를 형상으로 표현하였다. 고구려 고분에 그려진 사신도는 도교의 방위신을 그린 것으로, 죽은 자의 사후 세계를 지켜 주리라는 믿음을 표현하고 있다.

읽기자료

미륵 신앙과 화랑

진지왕 때에 와서 흥륜사의 승려 진자가 법당의 미륵상 앞에서 소원을 빌며 말했다. “원컨대, 우리 부처님이 화랑으로 변하여 세상에 나타나시면 내가 항상 얼굴을 가까이 뫼시고 받들어 모시겠습니다.” 그 정성스럽고 지극한 기원의 심정이 날로 더해 가더니, 어느 날 꿈에 한 승려가 나타나 말했다. “웅천의 수원사에 가면 미륵선화(彌勒仙花)를 볼 수 있으리라.” 진자가 꿈에서 깨어 놀랍고도 기뻐서 그 절을 찾아가니, 한 소년이 친절하게 맞이하며 자신도 서울 사람이라고 하였다. …… 진자가 다시 서울로 올라와 마을을 찾아다니면서 그를 찾았다. 그러다가 화장을 하고 장신구를 갖춘 수려한 남자 아이가 영묘사의 동북쪽 길가에서 노는 것을 보았다. 진자는 그가 미륵선화라고 생각하여 가마에 태우고 들어와서 왕에게 보였다. 왕은 그를 공경하고 사랑하여 받들어 국선(國仙)으로 삼았다. 그는 자제(子弟)들을 화목하게 했으며, 예의와 가르침이 다른 사람과 다르고, 풍류가 세상에 빛났다. 〈삼국유사

업설(業說)

왕과 귀족의 우월한 지위는 선한 공덕을 많이 쌓은 결과라는 해석이 가능하여, 왕의 권위와 귀족의 특권을 인정하는 일면이 있다.
이차돈 순교 사실을 새긴 돌기둥(경주 박물관 소장)
현무도(평남 강서 강서 대묘)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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