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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Ⅰ. 민족의 새벽과 부족 국가의 자라남
  • (4) 그 밖의 여러 부족 국가

(4) 그 밖의 여러 부족 국가

북쪽의 부족 국가

우리 나라 북쪽에 자리를 잡은 부여와 고구려는 대륙과의 관계가 밀접하여, 그의 영향을 받은 바 커서, 고조선 다음 가는 부족 국가를 만들 수 있었다.

부여는 북 만주 송화강(松花江) 유역의 넓은 벌판에 위치하여 오곡이 잘 되니 양식이 풍족하여 창고를 만들어 쌓아 두었다 한다. 위에는 왕이 있고, 그 밑에 마가(馬加), 우가(牛加), 저가(豬加), 구가(狗加) 등 귀족들이 있어서 나라를 다스렸으며, 아래에는 하호(下戶)라고 불리우는 사람들이 직접 노동을 하여 생산에 종사하였다.

법률은 매우 엄하여 살인한 자는 사형에 처하고, 그 가족은 노비로 삼았으며, 도둑질한 자는 그 물건의 12배를 물게 하였고, 특히 간음과 여자의 시기는 극형에 해당하였다. 농업 사회니만큼, 추수가 끝난 후에는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 하늘에 제사 지내는 풍속이 있었으니, 이를 영고(迎鼓)라 불렀다.

고구려는 부여족의 한 갈래로서 압록강의 중류 기슭을 중심으로 자라난 나라이다. 처음 이 지방에 한의 현도군이 놓여지자, 이를 내쫓기 위하여 힘을 모으게 된 겨레는 서기 전 1세기 경 부족 국가를 만들어, 현도군의 세력을 만주 깊숙이 밀어냈다. 이 지방은 워낙 험한 산과 깊은 골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환경에서 자라난 고구려 사람의 성격은 매우 억세고 슬기로왔으며, 또한 평야가 좁고 땅이 메말라서, 양식이 넉넉지 못하였기 때문에 자연히 절약을 하는 한 편, 무력으로 외부로의 발전을 꾀하게 되었다. 따라서 고구려는 그의 세력이 자못 강성하여져서, 현도군을 내쫓은 후에도, 이웃의 옥저 및 동예를 자기 세력 밑에 두었다.

고구려는 본래 5개의 부족이 합쳐서 부족 국가를 만들고, 그 중 강한 부족의 부족장이 세습적으로 왕위에 올랐으며, 각 부족의 대가(大加)들은 자기 부족을 통솔하는 한 편, 중앙 정치를 받들었다. 그 밑의 하호들은 농사를 짓고, 또는 멀리 옥저, 동예에서 식량, 소금, 생선을 운반하여 귀족들의 양식을 대어 주었다.

고구려의 언어와 풍속은 대개 부여와 비슷하였으나, 옷차림에 조금 다른 점이 있었고, 또한 환경의 차에 의하여, 성격이 달랐다. 즉 부여인이 온순하고 평화를 사랑하였음에 대하여, 고구려인은 억세고 급하며 싸움을 좋아하였다. 나라에는 감옥이 없어서, 죄지은 사람이 있으면 대가들이 의논하여서 이를 죽이고 처자는 노비로 삼았다. 또한 부여의 영고와 같이 고구려 사람들도 역시 10월에 온 나라 사람들이 모여서 하늘에 제사지내고 추수를 감사하였으니, 이를 동맹(東盟)이라 불렀다.

동해안의 부족 국가

옥저는 지금의 함흥을 중심으로 함경도 일대에 걸치고, 동예는 그 남쪽에 접하고 있었으니, 이 지방은 멀리 동해안에 치우쳐 있기 때문에 문화와 사회가 뒤늦고, 따라서 왕을 중심으로 하는 부족 국가를 만들지 못하여, 마을마다 우두머리가 있어서 마을을 다스려 나갔다. 이와 같이 옥저와 동예는 그 나라로 힘이 모여 있지 못하였기 때문에, 식량을 얻고자 쳐들어오는 고구려를 막아내지 못하고, 그에 복속되어 해마다 많은 물자를 바치지 않으면 안 되었다.

옥저는 농작물이 매우 잘 되고, 생선, 소금 등 해산물도 풍부하였으나, 항상 고구려의 경제적 착취에 시달려 군색한 살림살이를 면하지 못했고, 따라서 사회의 발전은 막히게 되었다. 옥저인의 음식, 거처, 옷차림 및 예절 등의 풍속은 대개 고구려와 비슷하였으나, 다만 고구려의 데릴사위 제도에 대하여 옥저에는 민며느리 제도가 있었다.

동예는 농업 사회로서 주로 농사를 짓는 한 편, 누에를 치고 길쌈이 성하였으며, 별을 관측하여 그 해의 풍년과 흉년을 점치는 풍속이 있었다. 또한 여기서도 10월에는 1년의 추수를 감사하여 하늘에 제사를 지냈으니, 이를 무천(舞天)이라 불렀으며, 이것은 우리 조상들의 공통적 신앙에서 나온 것이다.

남쪽에 있던 삼한

고조선 시대부터 한강 이남에는 진국이라 하여 한(韓)의 종족이 부락을 이루어 살고 있었으니, 이들은 일찍부터 서해안을 끼고 북쪽에서 내려온 무리들이다. 진국이 점차로 발달하매 한강 유역에 진한(辰韓), 충청, 전라도 지방에 마한(馬韓), 경상도 지방에 변한(弁韓)의 세 덩어리로 나뉘어지게 되었는데, 그 중 마한이 가장 크고 강하여, 그 때는 마한의 맹주(盟主)인 월지국(月支國)의 진왕이 진한과 변한의 일부를 통치한 일도 있었다. 마한과 진한은 합하여 50여의 작은 마을 나라가 있었고, 변한에는 20여의 마을 나라가 있었으며, 그 중 큰 나라는 일만 여호나 되고, 작은 나라는 수백 호에 불과하였다. 이 나라들은 각기 우두머리에 의하여 다스려지는 동시에, 또한 여러 나라들이 모이어 마한, 진한, 변한의 세 연맹 조직을 만들었으나, 강력한 중앙 집권적 국가를 이루지는 못하였다.

삼한은 비록 세 덩어리로 나뉘어졌지만, 모두 비슷한 사회의 모양과 언어 풍속을 가지고 있었다. 제정(祭政)이 분리되어, 마을마다 신지(臣智)니 읍차(邑借)니 하는 군장이 정치를 하였으며, 동시에 천군(天君)이라 하는 제관도 따로 있어서 천신에 제사를 지냈다. 천신을 모신 곳을 솟대(蘇塗)라 하여, 큰 나무를 모시고 거기에 방울과 북을 달아 놓았으며, 죄를 지은 사람이 이 안에 도망하여 들어가도 잡지 못할 정도로, 이 지역을 신성히 여겼다.

삼한은 대개 농사를 주로 짓고 겸하여 누에를 치고, 명주를 짤 줄 알았었다. 변한은 특히 철이 많이 나서 시장에서 돈처럼 썼으며, 멀리 왜국과 낙랑, 대방군에서도 사갔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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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의 여러 부족 국가의 분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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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아두기〉

영고. 무천. 월지국. 솟대.

〔학습 활동〕

우리들은 지금까지 조상들이 처음으로 나라를 이룩할 때까지의 여러 가지 활동과 그 시대의 모양을 책에서 읽었고 선생님의 자세한 말씀도 들었다. 국민학교 때보다 좀 어려운 것도 있었으나, 그 대신에 더 자세히 알고 싶은 여러 가지 재미나는 문제가 많이 생겼다. 그래서 우리들은 분단을 나누어 가지고,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조사하고 연구하여, 아득한 옛 문화와 조상들의 살림살이를 살펴 보고자 하는 것이다.

선생님은 분단을 이렇게 나누어 주셨다.

① 여러 가지 참고서, 그림책을 많이 모아 가지고 오는 분단.
② 직접 산과 들에 나가서 유물과 비슷한 물건을 찾아 오는 분단.
③ 다른 곳에서 공부하는 벗들에게 그 지방의 옛 문화를 알려 달라는 편지를 쓰는 분단.
④ 박물관, 기타 우리 학교 선생님 이외의 이러한 연구를 하시는 선생님을 찾아 가서, 말씀을 듣고 오는 분단.
⑤ 옛 문화를 그림으로 그리고, 만들어 보고, 사진도 찍고 하는 분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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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활동할 인원을 정한 다음, 우리들은 알아 보고 싶은 여러 가지 문제를 각 분단을 통해 내어 놓았는데, 서로 같은 것도 있고, 어려운 것도 있어서, 선생님께서 우리들에게 맞도록 다음의 몇 가지를 추려 주셨다.

(1) 우리 민족은 대체로 어느 길을 밟고 이동해 왔으며, 지금 남아 있는 언어, 풍속 등에 비추어 볼 때, 어느 나라 지방의 풍속과 가까운 것이 많은가 알아 보자.
(2) 돌 연장, 불의 사용이 발달되어 온 자취를 알아 보고, 그림을 그려 보자.
(3) 단군 임금과 개천절에 대하여 자세한 것을 알아 보고, 우리가 단일 민족이라는 자랑을 다시 한 번 새롭게 하자.
(4) 처음으로 외국의 지배를 받게 된 한(漢) 사군의 설치는 우리 나라로서 매우 슬픈 사실이나, 또한 그 대신 얻은 바 이익도 많은데, 이를 알아보자.
(5) 옛 조상들의 종교 생활은 어떤 동기에서 시작되었으며, 지금까지 남아 있는 것은 어떠한 것이 있는가 알아 보자.
(6) 북쪽 지방과 남쪽 지방은 우량, 기온의 차이가 있어 농사 짓는 것도 다른데, 오랜 옛적에는 서로 왕래하지 못하여 풍습이 다른 점도 있었다. 그 중 삼한과 부여를 비교하여 보자.
(7) 김해에 있는 조개묻이의 이야기를 자세히 알기 위하여, 그 곳 중학교 일학년 학생에게 펀지를 쓰자. 그러나 우리 고장에 있는 좋은 재료를 그 곳에 보내 주도록 할 것도 잊지 말자.
(8) 관서 지방이 문화적으로 먼저 깨우친 까닭을 살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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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선생님께서 칠판에 쓰신 것을 받아 쓰자, 곧 분단끼리 의논을 시작하여, 이번 토요일과 일요일에 조사할 문제와 활동할 계획을 세웠다. 아마도 이 다음 국사 시간에는 재미 있는 이야기가 퍽 많이 나올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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