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기울어짐

오랜 평화에 젖은 신라는 호화스런 생활과 놀이만을 쫓게 되어 이전의 화랑도에서 볼 수 있던 바와 같은 굳센 정신은 조금도 찾을 길이 없게 되었으며, 더우기 백성들의 토지와 재물을 빼앗아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귀족들에 비하여, 일반 평민들의 생활은 너무나 비참하여 국민들의 단결이 없어지니, 신라의 국운은 점차 기울어가게 되었다. 신라 말기 조정에서는 왕위(王位) 다툼이 그칠 사이가 없었고, 특히 51대 진성여왕(眞聖女王)이 즉위한 뒤에는 간신들에 의하여 정치가 문란해지고, 때마침 흉년이 들어 백성들의 생활이 곤란하여지니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었다.

중앙과 지방의 이러한 혼란을 틈타서 일어난 세력은, 신라에 억압을 당하며 살던 백제의 유민과 고구려의 유민들이었다.

견훤(甄萱)은 전주에서 백제를 다시 일으킨다 하고, 백제 유민을 모아 후백제(後百濟)를 세웠으며, 궁예(弓裔)는 고구려를 다시 찾는다 하고 철원(鐵圓)에 도읍하여 후고구려를 세웠다. 신라는 이 두 나라를 쳐 없애지 뭇하고, 결국 반도는 다시 삼국으로 나뉘어져서 이른 바 후삼국 시대를 이루었다.

삼국 중 가장 국력이 강한 나라는 궁예의 후고구려로서, 국토를 태봉이라 고치고 부하 왕건(王建)을 시켜 이웃 땅을 침범하여 영토를 넓혔으나, 그의 성질이 포악하여 인심을 잃었으므로, 마침내 부하들에게 쫓겨나고, 대신 왕건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다. 왕건은 국호를 고려(高麗)라 하고, 송악(松岳)에 도읍하니 이 분이 곧 고려의 태조(太祖)이다.

신라의 망함

신라는 새로 일어난 양국의 압박을 받아 나라의 힘이 나날이 기울어졌으나, 조정에서는 조금도 정신을 차리지 않고 그대로 정권 다툼과 사치스런 향락에 빠져 있었으므로, 신라 위에는 어두운 구름이 덮이게 되었다. 왕건이 고려를 세우자, 신라는 고려에 사신을 보내어 양국의 사이는 친밀하게 되었으나, 도리어 이것이 견훤의 침략을 받는 동기가 되어, 포석정(鮑石亭)의 달콤한 주연에 정신을 잃고 있던 경애왕은 갑자기 몰려든 후백제군에게 붙잡혀 불쌍한 최후를 당하게 되었다. 이에 견훤은 대신 경순왕을 세운 후, 많은 포로와 재물을 가지고 돌아가버렸다.

그 후 신라는 나날이 영토가 줄어지고, 또한 일반 민심이 고려에 쏠리므로, 하는 수 없이 나라를 들어 고려에 항복하고, 56왕 992년의 기나 긴 역사의 페이지를 닫게 되었다(서기 935년). 후백제의 견훤도 그 후, 가족끼리 불화가 생기어, 결국 그 이듬 해 고려에 항복하니, 한참 동안 분열을 거듭하던 반도도 이에 다시 통일을 보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