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통일되는 고려

고려 태조 왕건(王建)은 918년 궁예를 물리치고, 무엇보다도 먼저 튼튼한 도읍지를 구하려는 뜻으로 서울을 송악(松岳)으로 옮긴 다음, 신라와 후백제의 연이은 항복(936)을 받고, 신라 말에 흩어졌던 민족을 한 나라로 뭉쳐, 새로운 건국의 기초를 닦는 데 모든 힘을 기울이게 되었다.

왕건은 고려가 고구려를 이어 받았음을 깊이 자각하고, 우선 고구려의 옛터를 회복할 것을 목적으로, 서북의 중심지 평양성을 고쳐 쌓고, 북쪽의 경계를 굳게 하였다. 특히 평양은 고려 시대를 통하여 항상 중요시되어 왔는데, 이것은 시초부터 북진을 목표로 나아가는 고려였기 때문이다. 왕건의 통일이 이루어지자, 걸안은 사신을 보내어 화친하기를 청하였으나, 한 마디로 거절하여버린 까닭도 이러한 북진 정신에서 나온 것이었다.

한 편 나라 안의 여러 사람들을 잘 포섭하고, 발해의 유민(遺民)까지도 잘 보호하여서 한 겨레로 뭉치게 되고, 신라의 발달된 문화를 이어받아, 급한 변화를 일으켜 민심이 동요되지 않도록 힘썼다. 지방을 다스림에도 되도록 자치적인 방법을 취하였으며, 중앙의 관리들도 신라, 후백제의 구별 없이 훌륭한 인재라면 서슴잖고 불러들었다. 특히 주목할 것은 불교를 더욱 숭상하여 고려의 국민 사상을 이로써 지도하고, 연등회, 팔관회 같은 재래의 신앙과 더불어 국민 생활 속에까지 파고 들었다.

안정되어가는 사회

태조가 남겨 준 십훈요(十訓要)를 잘 지켜가며, 혜종, 정종, 광종이 차례로 왕위에 올라, 묵은 제도를 차차로 고쳐 나아갔다. 그 동안 왕규(王規) 같은 외척이 나라를 어지럽혔으나, 고려는 이러한 장해를 물리치고 자라나고 있었다.

광종 9년에는 쌍기(雙冀)의 의견을 좇아 과거 제도를 실시하게 되었다. 경전(經典)과 문예를 주로 하고, 그 외에 한학, 천문학, 지리학의 잡과도 있었으나, 잡과에는 신분이 낮은 사람들이 응시하였다.

인재를 고르기 위한 과거 제도와 더불어, 경제적 기반을 세우기 위한 토지 제도가 경종 때 이루어졌다. 이것을 전시과(田柴科)라고 하는 바, 국가 관리의 봉급으로 토지를 계급의 높고 낮음에 따라 나눠 주는 것이며, 토지는 원칙적으로 국가의 소유이므로 마음대로 팔고 사지를 못하였다. 그 외 구분전(口分田), 공음전(功蔭田), 공해전(公廨田)과 같은 여러 종류의 토지가 생기게 되었다.

한 편 늘어가는 노비의 억울한 사정이 있으면 재판하여 해방시켜 주었고, 항상 북쪽 국경 지방에 주의하여 광군사(光軍司)란 군대까지 마련하였다.

정비된 여러 제도

고려에서는 처음부터 급격한 개혁을 하지 않고, 차차로 고쳐나오더니, 6대 성종(成宗) 때에 이르러 정치 제도의 기반을 거의 완성하여 놓았다. 성종은 특히 유교를 존중하여 중국 당나라의 좋은 정치 제도를 많이 본받고, 신라 시대부터 내려오던 것을 고쳐서, 중앙에 3성 6부(三省六部)를 두고 9시(寺) 어사대와 같은 기관이 이에 따르게 하였으며, 지방은 12목(牧)으로 나누었다가, 다시 10도(道)로 고쳐 그에 안찰사를 보냈다.

군대는 최고 기관인 중추원(中樞院) 밑에 6위(衛) 38령(領)을 두더니, 다시 좌우(左右)의 두 군영(軍營)을 설치하고, 동북과 서북의 변방에는 병마사(兵馬使)를 보내어 오랑캐에 대비할 것을 잊지 않았다.

더우기 교육을 크게 장려하여 오늘의 대학과 같은 국자감(國子監)을 두고, 우수한 학생은 송나라로 유학도 보냈으며, 또한 도서관이라고 할 수 있는 비서성이나 수서원까지 마련하였다. 농업에 대한 보호 정책에도 볼 만한 것이 적지 아니 하였으니, 농사 기구의 제조를 서두르고, 농번기에는 모든 부역을 금하였으며, 흉년이 든 곳에는 세금을 면제하도록 하였다. 빈민 구제와 물가의 조절을 목적으로 한 의창(義倉)과 상평창(常平倉)을 각 고을에 두고, 주막 같은 것을 많이 만들어서 교통의 편리를 도모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