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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익어 가는 귀족 문화

현종과 문종

11세기에 이르러 고려는 문화의 황금 시대를 이루었다.

현종 때에는 거란의 세력을 잘 막아 내었을 뿐 아니라, 불교를 일으키고 대장경을 만들었다. 지방 구획을 5도 양계로 고치고 개경 부근에 성을 쌓았다. 지방 사람들에게도 과거에 응시하도록 장려하였으나 관리 등용에는 아직도 문벌이 더 중요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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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도 양계
5도 양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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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종 때에 이르러 더 한층 문치주의가 익어 갔고 삼심제(三審制)⋅배심제(陪審制)와 같은 재판 제도를 비롯하여 대비원(大悲院)이란 구호 기관을 마련하였다. 한편 지방 관리의 자제를 서울에 머무르게 하는 기인제(其人制)를 써서 왕권을 튼튼히 하였다.

불교와 신앙 생활

불교는 국초부터 국교로 장려되어 신라 때에 못지 않게 활발하고 해마다 국가적 행사로 연등회⋅팔관회 등과 같은 불교의 의식을 열었다.

훌륭한 중을 국사(國師)⋅왕사(王師)로 추대하여 왕의 고문으로 삼고 승과 제도(僧科制度)까지 마련하였으며, 대각 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은 4,700여 권의 속장경(續藏經)을 만들었다.

민간 신앙으로서는 풍수 사상(風水思想)이 유행하여 집짓는 데나 묘지 선택에 널리 이용되었다.

유학과 교육

과거 제도의 영향을 받아 학문이 크게 일어났다. 관학(官學)보다 사학(私學)이 더 발달하여 개성에 12개의 사립 학당이 있었는데, 이것을 십이도(十二徒)라고 불렀으며, 그 중에도 최충(崔沖)의 구재학당(九齋學堂)이 유명하였다. 예종은 관학을 진흥시키고자 칠재(七齋)를 두어 국자감(國子監)을 더 강화하고 지방에는 향학(鄕學)을 세워 국가에서도 학문을 장려하는 뜻을 보였다.

신분에 따라 공부하는 내용도 달랐는데, 귀족은 경서⋅사학⋅문예를 배웠고, 낮은 계급에서는 천문학(天文學)⋅산학(算學)⋅역학(曆學)과 같은 실제적인 기술을 배웠다. 양현고(養賢庫)와 학보(學寶)와 같은 장학 기관도 마련하였다.

사회 생활

귀족 계급은 많은 토지를 차지하여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으며, 중류 계급은 주로 기술업을 가지게 되었다. 하류 계급인 자유민은 대부분이 농민으로서 조세와 병역의 의무가 있었으며, 천인 계급에 속하는 노비⋅뱃사공⋅광대⋅화척 등은 엄격한 신분의 제한을 받고 직업을 바꾸지 못하도록 하였다.

대각 국사의 주장으로 삼한 통보(三韓通寶)⋅해동 통보(海東通寶) 등의 철전을 만들어 사용하도록 권장하였고, 은병(銀甁)이라는 돈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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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화폐
고려의 화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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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밭을 세 가지 등급으로 나누어 세금을 따로 받고, 결부제(結負制)를 표준으로 경지 면적을 계산하였다. 또한 흉년에 대비하여 의창(義倉)을 만들고 물가를 조정하기 위하여 상평창(常平倉)을 마련하였고, 제위보(濟危寶)⋅팔관보와 같은 재단에서 쌀과 포목을 모아 사회 사업에 썼으며, 계(契)도 이 때부터 실시되었다.

민간에서는 생활이 안정됨에 따라 여러 가지 명절을 성대히 맞았는데, 지금까지 내려오는 풍습도 있다. 한편 귀족들은 사냥과 격구 같은 경기를 즐겼고, 무인들은 마술과 궁술로 재주를 겨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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격구와 비슷한 경기
격구와 비슷한 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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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용어》

대비원, 팔관회, 속장경, 승과 제도, 12도, 구재학당, 양현고, 학보, 삼한 통보, 결부제, 의창, 상평창, 계, 칠재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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