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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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중학교 국사 2차
  • 단원 4. 조선 시대의 생활과 세계의 발전
  • Ⅰ. 국토의 발전과 제도의 정비
  • [1] 조선 왕조의 확립

[1] 조선 왕조의 확립

태조의 정책

이성계는 신흥 귀족들의 추대를 받아 새로운 왕조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조선(朝鮮)이라 하였다. 태조는 새 나라를 이끌어 나가기 위하여 도읍지를 한양(漢陽)으로 옮기고(1394), 여러 가지 시설을 갖추었다. 오늘의 서울이 우리 나라의 정치⋅사회⋅경제⋅문화의 중심지가 된 것도 이 때부터이다.

태조는 고려 시대의 낡은 질서를 무너뜨리고 새로운 나라의 기초를 닦고자 세 가지 정책을 세웠다. 이웃 나라와의 관계에 있어서는 사대 교린(事大交隣) 정책을 쓰고, 불교를 눌러 유교를 일으키며 농업을 산업의 기본으로 삼았다. 이러한 삼대 정책은 태조 이후 조선 왕조 500년을 통한 정치의 바탕이 되었다. 나라가 세워 진지 얼마 후에 왕자들 사이에 싸움이 일어나서 왕실은 한때 몹시 어지러웠다.

태종은 정치 질서를 바로 잡은 후 신문고(申聞鼓)⋅호패제(號牌制) 등을 마련하여 백성의 생활 향상을 꾀하였으며, 활자(活字)를 주조하고 학문을 장려하는 등 문화 발전에도 힘을 기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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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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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 대왕의 정치

세종은 조선 왕조의 역대 임금 중에서도 가장 현명하고 성품이 온후하였으며, 학문을 좋아하였다. 나라의 발전과 백성의 생활을 염려하여 여러 방면에 공적이 많았는데, 그 가운데서도 가장 큰 업적은 훈민 정음(訓民正音)을 제정 반포한 일이고, 또 집현전(集賢殿)을 두어 학자들에게 학문을 연구케 하였다는 것이다. 그 결과 고려사(高麗史)⋅농사 직설(農事直說)⋅용비 어천가(龍飛御天歌)⋅팔도 지리지 등 여러 가지 책이 편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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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도 지리지
팔도 지리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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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에 있어서도 세계에서 제일 먼저 측우기를 발명하였고(1442), 이천(李蕆)⋅장영실(蔣英實) 등으로 하여금 천문 연구와 기계를 만들게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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측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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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 박연(朴堧)에 의하여 아악이 정리되었으며, 성삼문(成三問)⋅최항(崔恒)⋅신숙주(申叔舟) 등 여러 학자들은 어학을 연구하였다. 또한 불교에 관한 서적을 간행하였으며, 백성의 생활을 위하여 토지 제도를 고쳤다.

한편 세종은 북으로의 여진족과 오랑캐를 몰아내어 압록강과 두만강을 경계로 하는 오늘날의 국토를 완성하였고, 남쪽 해안을 자주 침범하는 왜인을 정벌하였다.

세조와 성종의 업적

문종 다음에 나이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그의 숙부인 수양 대군(首陽大君)은 단종과 사육신(死六臣)들을 몰아 내고 왕위에 올라 세조(世祖)가 되었다.

그러나 세조는 정치와 문화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인지의(印地儀)를 발명하여 땅의 고저 측량을 실험하고, 제방의 축조, 양잠업의 장려로써 농업을 발달시켰다. 또 간경 도감을 두어 불경을 번역 간행하고, 지금의 서울 파고다 공원 자리에 원각사를 세웠다. 왕은 여러 학자로 하여금 나라를 다스리는 근본 지침이 되는 경국 대전(經國大典)이라는 법전을 펴내게 하였다.

성종(成宗)은 불교를 누르고 유학을 장려하여 학문을 발전시켰으며 동국 통감(東國通鑑)⋅동국 여지 승람(東國輿地勝覽)의 책들을 편찬하였다.

조선 왕조는 나라의 시초부터 슬기로운 임금이 나와 어진 정책을 하였고, 훌륭한 정치가와 학자들의 활약으로 성종 때에는 새 나라의 기초가 튼튼하게 세워졌다.

《주요 용어》

사대 교린 정책, 신문고, 호패제, 훈민 정음, 집현전, 측우기, 동 활자, 경국 대전, 동국 여지 승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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